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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Oct 28. 2022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지난 주말 코로나 확진 통보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격리 통보였다. 그래도 국가에서 허락한 합법적 휴직(?)인데 이참에 푹 쉬기로 했다. 며칠을 아파서 낑낑대다가 3일쯤 돼서 슬슬 정신이 돌아왔다. 여유가 생기니 집도 청소하고 물건들도 다시 정리해봤다. 책장은 안 본 사이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정말 눈에 보이는 곳만 청소를 하고 지냈던 거 같다. 


책장 이곳저곳을 닦다가, 책장 제일 위에 올려져 있는 상패를 봤다. 내가 2015년에 전국 투자자교육협의회에서 받은 상패였다. 상패에는 그때 당시 금융투자협회 회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당시 수상이 되고 나서 상패를 받으러 가족 모두 63 빌딩으로 초청받았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 앞에서 단상에 올라 수많은 기업인들과 앞에서 상 받은 건 내 인생에 있어서도 뜻깊은 날이었다


그때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영등포구 여의도 이곳 어딘가에 내 직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한 대학 선배들도 증권사를 목표로 하고 있었고, 내 친구들도 같은 꿈을 꾸며 나와 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졸업학기를 앞두고 메이저 증권사 최종면접에 갔다. 경쟁률은 1.4대 1, 최종면접에 있는 누구보다 투자경험이 많았고, 영업을 잘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날로부터 6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상패를 받았을 때 내가 그렸던 미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 또래에 비해 일찍이 취업을 하여 젊은 나이에 승진도 했다. 월급은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비할바가 안되지만 승진하니 먹고살 만은 하다. 영업압박을 받거나, 주식이 떨어졌다고 밤잘을 설치거나 그럴 일도 없다. 가끔 국정감사 때만 머리를 쥐어뜯을 뿐.


이처럼 인생을 돌아가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대학을 들어간 거부터 지금에 내가 있기까지 사실 온전히 계획에 따라 온건 얼마 안 될 것이다. 생각해봤다. 만약 그때 내가 증권사에 붙었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꿈꾸던 여의도에 있는 증권사에 다닐지라도 지금의 행복과는 다를 거 같다. 오히려 불행했을 수도 있다(합리화 중). 특히 머리가 더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증권사를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재취업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지금 안에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월급은 적었기에 돈이 들어올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그래도 직장은 안정적이니 브런치나, 코 멘토, 노무사 공부 등 다른 활동에 좀 더 시간 투자를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방법을 찾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게 돌아봤을 때 덜 후회하는 길이 될 거라 생각한다. 



보통 20대의 계획은 취업, 재무, 빠르면 결혼까지 3가지 정도가 주제가 이룬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만 돌아봐도 20대를 때는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좀 더 많이 받는 시기였던 거 같다.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 한번 더 눈이 가고, 주변 사람들 이렇게 해라고 말에 "아그런가" 싶기도 하고, 내 계획에 있어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말이 참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30대가 돼보니 20대처럼 행동하면 안 될 거 같다고 느낀다. 일단 각자만의 주어진 상황이 다르는걸 뼈저리게 느낀다. 같은 집을 구하더라도 누구는 영 끌을 해야 하고 누구는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지원받는다. 취업, 결혼도 마찬가지다. 남이 미리 겪어봤다고 해서 내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이란 절대 없다. 그렇기에 30대의 계획은 좀 더 신중하게 세우고 스스로 공부하며 만들어 가야 함을 배웠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20대와는 다르게 관계를 맺고 끊고를 하게 되었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 내 계획을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다. 점차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친구보다도 나와 비슷한 직장, 생각,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더 많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냈던 무리, 친구들과는 거리가 생겼고, 이런 것도 일정 부분 받아들여야 함을 배웠다.


20대 때는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항상 샀다. 그게 유행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연초만 되면 다이어리 사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서점을 갔다. 직장에 오고 나서 매년초에 큼직만 한 다이어를 주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다이어리를 사서 해야 할 일들을 메모했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서는 거의 노트북에 한글과 엑셀로 계획과 한일을 정리했다. 정리도 빠르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씨를 해석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30대 초반이 돼서는 큼직큼직한 계획 외에는 잘 안 세우게 되었다. 회사일도 많고, 일 끝나면 강의도 하다 보니,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게 쉽지가 않았다. 계획을 한번 짜도 못 지키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연말을 맞이하다 보니 딱히 한 게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아무리 일상이 바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 들더라도 계획은 항상 세워야 함을 배웠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처럼 살고 싶다는 말과 동일하다.



학생들을 멘토링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제가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걸까요?" 취준이라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터널 앞에서 이렇게 준비하면 되는 걸까.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질문하는 걸로 이해한다. 나는 이 질문에 피드백하며 말끝에는 "계획대로 잘 안될 수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달려 나가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붙인다. 이건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먼지가 쌓인 상패를 닦아 다시 책장에 넣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저 상패도 내가 대학 4년간 투자 공부하며 얻은 성과였다. 결국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랬듯 앞으로도 계획대로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계획을 세운 인생이 세우지 않은 인생보다는 좀 더 괜찮거라고, 삶의 증거들이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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