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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Jan 26. 2019

하루도 같은 적 없는 노을

오늘의 노을은 우리가 처음으로 보는 노을이다

날짜별로 정리된 사진 폴더를 열어보면, 마지막엔 늘 노을 사진이다. 그러니까 매번 다른 장소에서 나는, 노을이 질 때마다 가만히 멈춰 섰던 모양이다. 거기 이유란 게 있을까? 그저 서쪽 하늘이 붉게 빛났으므로, 하루가 조용히 저물고 있었으므로 걸음을 멈추었을 것이다.          


먼 옛날, 기억 속의 노을


봄날의 저녁 하늘은 곧잘 봉숭아 빛으로 물들곤 한다. 조약돌로 으깨어 손톱 위에 얹곤 하던 봉숭아 꽃잎의 색깔이 꼭 저랬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여름이면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들 위로 노을이 번진다. 여름 저녁의 구름들은 바람에 흩어지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어서 어느 계절보다 다채로운 하늘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가을에 지는 노을은 단풍을 닮아 있고, 겨울이면 맑고 쨍한 대기 탓에 노을이 세밀화로 그린 듯 더욱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떤 계절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유년의 계절 위로 지던 노을이다. 

    

어렸을 적, 해 지는 풍경 위를 길게 가르던 것은 저녁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이었다. 흙장난을 하다가도, 강아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달리다가도, 그 부름에 우리는 저마다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다. 노는 일밖에 하지 않는데 하루해는 어찌나 짧던지 아쉬움에 머뭇대며 돌아보면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위로도, 한 번도 그 너머까지 가본 적 없는 산꼭대기 위로도 붉디붉은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쉬이 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노을은 누군가 들판에 물감통을 엎지른 것처럼 번져갔다. 이내 마을은 어둠에 잠기게 될터였다. 흙 묻은 손을 털고 일어난 우리는, 낮 동안 길어진 그림자를 어둠에 조금씩 지워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다 자라서도, 다른 도시에 살게 되어서도, 여행을 가서 아주 낯선 땅에 머물고 있어도, 저물녘 노을을 바라볼 때면 꼭 어딘가로 돌아가야 할 듯한 기분이 든다. 못 마친 일이 있어도, 더 걷고 싶은 길이 남아 있어도 이젠 그만 마음에서 내려놓고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럴 때면 마음 한 편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는 해 위로 더 이상 이름을 길게 불러주는 이 없지만, 노을만은 여전히 고단한 하루 위로 저녁 인사처럼 내린다는 사실이.   

        


먼 여행, 낯선 곳의 노을


몇 해 전, 세계 3대 석양으로 유명한 휴양지에 엄마 아빠와 여행을 떠난 적 있다. 1년 중 한여름 한 달을 제외하고는 내내 농사일에만 매달리는 부모와 휴가로 허락된 보름을 열두 달 동안 쪼개 써야 하는 내가 시간을 맞추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언제 또 이렇게 셋이서 떠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어렵사리 비행기 표를 끊게 만들었다. 딸자식은 그동안 어떻게든 가고 싶은 곳에 다녀오곤 했으면서, 부모에겐 여태 세상의 다른 한편을 보여주지 못하고 살았다는 죄책감도 한몫했다. 한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아온 부모에게는 난생 처음 나라 밖으로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은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쉽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선 부모와 무언가 잘못될까 신경이 곤두선 나는 번번이 부딪쳤다. 처음 와보는 이국의 휴양지에서 엄마 아빠는 어색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딘가 주눅 든 엄마가 사소한 실수를 할 때마다 타박하는 아빠도, 내 눈치를 보며 즐겁지 않아도 애써 즐거운 척하는 엄마도, 여행지의 음식 중 입맛에 맞는 것이 없어 두 사람 모두 고역을 치르는 것도 마음을 불편하게만 했다.


고된 농사일에 뭉친 근육을 풀어주려고 예약을 잡아둔 마사지 숍에서도 두 사람은 좀처럼 몸의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낯선 나라의 낯선 냄새, 낯선 손길 속에 잔뜩 굳은 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두 시간에 걸친 마사지를 받은 이튿날, 엄마의 왼쪽 발은 검푸른 멍이 올라온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서툰 마사지사에게 아프단 말도 못 했을 모습이 그려졌다. 


속상할수록 말은 퉁명스럽게 나갔다. 그건 사실 떠나기 전 내가 그렸던 여행의 그림이 나오지 않는 모든 상황에, 공연히 짜증을 부리는 꼴이었다. 쉬려고 와서도 쉬는 법을 몰라 멀뚱히 앉아 있는 내 부모는, 나와 무엇이 달라 부모의 삶만을 살게 된 걸까. 나는 또 뭐가 달라 고마움도 모르고서 저 내키는 대로만 사는 자식의 삶을 살게 된 걸까.      


멀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내 나이 때의 엄마 아빠에겐 정말 없었을까?
 어쩌면 시간을 늦춰 태어났더라면…… 
두 사람도 내가 그랬듯 아무렇지 않게
여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불가능한 가정을 할 때면 10년 전, 내가 오래 여행을 하고 오겠다 말했을 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눈빛들이 생각났다. 붙잡지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이전에 무얼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와도 다른 눈빛이었다. 너는 멀리 갈 줄 아는구나. 멀리 가려 하는구나. 돌아보지 말아라, 네 삶을 살아라.      


그때부터였다. 엄마가 내게 더 이상 어떤 밭일에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 것은. 내 부모가 바란 삶은 단지, 가장 자신들과 다른 무엇이었다. 뙤약볕과 흙투성이 옷, 고단한 육체노동으로부터 멀리 있는 삶. 빌딩숲 유리 안쪽의 안온한 삶, 볕을 보지 못해 하얘진 얼굴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느라 시력이 나빠지는 그런 삶……. 


그걸 아는 듯 모르는 듯 여태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왔다. 부모에겐 이제야,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마침내 그럴 시간이 생겼다는 듯 선심 쓰는 여행을 하면서.   


마음 먹먹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저녁마다 바다 위로 노을은 붉게 타올랐다. 남의 속도 모르고서. 이국에 온 여행자들에게 어떻게든 추억을 근사하게 남겨주어야 할 의무라도 진듯이. 여행 동안 내가 한 살가운 말이라곤 “거기 좀 서봐” 정도가 전부였지만 카메라만 들면 엄마 아빠는 두 손을 꼭 잡고 환히 웃었다. 처음 와보는 휴양지의 바다, 본 적 없는 근사한 노을을 배경으로. 이 여행에서 마음 다칠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처럼,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더없이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처럼.

어쩌면 그건 정말 매일의 노을 덕분이었을까? 온 바다를 물들이며 찾아오던, 우리의 허물마저 덮어주듯 조용히 내리던 노을. 사는 일은 늘 마음 같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지만, 나란히 서서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하루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내일도 다만 그럴 수 있는 하루를 보내라고. 


어떤 날은 지는 노을이 그만 하면 되었다는 하루치의 위로 같기도 했다. 그 대답이 듣고 싶어 나는 매일 저녁 서쪽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는지도. 그 앞에 기어이 엄마 아빠를 세우고 그토록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도.        



매일 저녁, 우리 곁의 노을     


오늘의 노을은 우리가 처음 보는 노을이다. 그 얘기를 해준 건 제주의 어느 지하 공연장, 무대에 홀로 선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이른 겨울이었고 아직 눈이 오기 전이었다. 그해 가을, 그는 단풍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해주었다. 지난해처럼, 또 지지난해처럼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지만, 이 잎은 내가 ‘처음으로’ 보는 잎이구나. 이번 봄에 새로 돋은 잎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그렇게 치면 비도, 눈도 내가 처음 맞는 비, 처음 보는 눈, 그리고 동시에 마지막인 것들이겠구나.


다 알고 있다고 여긴 이야기를 특별하게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얘기를 마치고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내가 이미 몇 번쯤 반복해서 들었던 곡은 그날 처음 듣는 곡이 되었다. 모든 노래는 사실 무대 위에서 단 한 번뿐인 노래가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는데도, 그날은 그 노래가 특별하게 들렸다. 


객석의 어둠에 몸을 묻은 채로 오늘이 처음이었을 모든 순간들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른 아침 친구가 공들여 내려주었던 커피, 어제와 또 다르게 반짝이던 함덕 해변의 물빛, 공연장으로 오는 동안 시내를 걸으며 올려다보았던 저녁 하늘…….


하루를 살며 우리는 모르는 채로 그렇게 매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너무 당연해 자주 잊는 사실. 어떤 순간도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을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리는 오늘의 노을을 만나,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오늘의 노을과 헤어지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매일의 노을은 그럴 수밖에 없다. 붉은빛이 같은 붉은 빛일 수도 없고, 구름이, 바람이, 저녁달이, 그것을 바라보는 오늘의 내가 또 다르다. 우리가 보았던 또한 아직 보지 못한 모든 노을이 그럴 것이다.


저물녘의 하늘을 한번이라도 오래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노을이 얼마나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지. 그리하여 가방을 뒤적여 카메라를 찾거나 옆에 선 이와 잠깐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한다는 걸.


하루를 아무리 바삐 가로지르는 사람이어도 노을이 질 때만은 걸음을 늦추어도 되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노을은 그런 식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멈춰 서서 바라보게 한다. 지금 봐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한 번뿐인 순간을.


그동안 노을 사진을 많이도 찍어두었다는 걸 깨달은 후로, 틈틈이 오늘의 노을을 찍고 있다. 노을일기쯤 될까. 퇴근이 늦 어져서, 날이 흐려서, 그냥 잊어버려서 보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나날들 중에도 노을을 마주한 저녁이면 부러 기록을 해두어야지.


그리고 한 해가 끝나갈 때, 올해 내가 본 노을의 목록을 추려보고 싶다. 맞아, 여기 갔다가 이런 근사한 노을을 보았었는데. 이건 누구랑 함께 있을 때였지, 하고 떠올릴 수 있다면 노을을 볼 때 한 번, 기억할 때 한 번, 두 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좋아해서 자주 찍었고 오래 머물렀던 25개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에세이집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2018, 위즈덤하우스) 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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