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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Feb 02. 2019

Collect moments not things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간뿐


Collect moments not things     


이 문장을 맞닥뜨린 건 어느 새벽녘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고, 스마트폰으로 웹상에 떠돌아다니는 낯선 나라의 풍경들 사이를 흘러 다니고 있을 때였다. 짙푸른 숲의 이미지 위로 떠오른 저 문장을, 밤길을 걷다 불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오래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언뜻 평범한 말 같으면서도, 동시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같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면 자주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일기를 쓰는 내가 순간을 수집해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실은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었다. 내 방식대로 순간을 수집하고 싶어진 건 그래서였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게 곧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고, 생활의 공간 가까이에 두고, 그것을 가꾸거나 돌보며 살아가는 일, 그게 한 사람을 말해준다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을 실제로 이루고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무수한 순간들이다. 닳거나 잃거나 사라져버릴 물건이 아닌 지금도 내게 찾아오고, 기억 속에서 자꾸 새로워지는 순간들.  

   

어느 고요한 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면 그것은 더 분명해진다. 그때 함께 있던 이도, 즐겨 찾았던 곳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순간만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어쩌면 저 문장은 그것을 알려주려고 먼 곳을 돌아 내게 도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간뿐이라는 것.     


물론 삶은 즐거운 일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에 대해 오래 생각할수록 그것은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찾지 못할 곳에. 마음 한편에 늘 남아 있는 후회와 하지 못한 말들, 그동안 저지른 숱한 실수들, 아직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우울 같은 것들……. 내 마음을 주로 채우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럴 때 내가 모은 이 순간들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순간들을 지나왔으며, 지금도 지나고 있다고.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지금 눈앞의 순간을 바라보라고.     



어쩌면 그만큼이 필요한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하나둘 늘려가고, 반대로 나를 지치고 시들게 하는 순간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 나를 위해 그만큼만 할 수 있어도, 매일이 그만큼씩 다행스럽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는 말을 믿는다. 내가 모은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 누군가 자신이 보낸 시간을 겹쳐보고 희미하게 웃거나, 일상을 좀 더 천천히 건너고 싶어진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그 누군가가 지금도 후회와 걱정에 마음 쓰며 사는 일을 견뎌내고만 있다면, 지친 손목을 잡고 이 순간들로 건너가고 싶다.     


여긴 왜? 아무것도 없잖아 하면,

나란히 앉아 물끄러미 지금을 바라보고 싶다.     

지금이 있다고. 

좋은 순간은 지금도 흐른다고.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지금을 사는 일.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더 잘 머무는 일.

지금의 내게는 그것이 잘 사는 일이다.     




*** 좋아해서 자주 찍었고 오래 머물렀던 25개의 순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에세이집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2018, 위즈덤하우스) 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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