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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Dec 09. 2022

일제강점기, 조선인, 인종과학

Lancet 출판 논문


지난 3년간 전 세계(영국, 브라질, 인도)의 연구자 9명과 함께 작업했던 인종차별에 대한 논문이 오늘 Lancet에 출판되었습니다. 


논문 전체는 인종차별 일반에 대한 것입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특히 집중해서 쓴 4 문단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1.

오늘날 인제백병원을 창립한 인물인 백인제는 일제강점기 경성의전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였습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해 10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뜻있는 젊은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졸업 이후 경성의전의 저명한 의학자인 키리하라 교수와 조선인의 혈액형 분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첨부한 사진은 그 논문의 첫 페이지입니다. 이 논문은 단순히 혈액형의 분포만이 아니라, ‘생화학적 인종 계수(Biochemical Race Index)’를 측정한 것입니다. 이 계수의 분자는 ‘A형과 AB형을 가진 사람의 숫자’이고 분모는 ‘B형 또는 AB형을 가진 사람의 숫자’입니다.


전남(171명), 충북(112명), 경기(311명), 평북(354명)의 조선인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502명의 '생화학적 인종 계수'를 측정한 결과, 일본인의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멀어질수록 그 크기는 줄어들었습니다. 


백인제는 이 결과를 두고서 “朝鮮人은 亞, 阿型, 日本人은 中間型(동아일보 1927년 7월 21일)”라고 합니다. 일본인은 진화의 중간형이고, 조선인은 그보다 못하다는 말을 남긴 것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으로 바라보면, 적혈구에 붙어있는 단백질의 형태에 따른 분류인 혈액형으로 만든 '인종적 우월성'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이 지표가 왜 이렇게 사용되었을까요.


2. 

이 연구의 우생학적/인종주의적 사고는 1918년 Lancet에 출판된 논문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피부색에 따라 진화의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우생학이 과학의 이름으로 널리 통용되고 받아들여지던 시기였습니다. 그 우생학은 하얀 피부를 가진 미국과 유럽인이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과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18년 학술지 Lancet에는 독일인 생리학자인 루드빅 히르쉬펠트가 <Serological difference between the blood of different races: the result of researches on Macedonian Front>를 출판합니다. 이 연구에서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의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혈액형을 확인하고 백인제가 쓴 논문에서 사용된 '생화학적 인종 계수'를 발명해냅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인, 백인일수록 이 수치가 높았습니다. 영국인은 4.5, 프랑스인은 3.2, 독일인은 2.8였고, 식민지 유색인종인 베트남과 인도에서는 0.5로 나타났습니다. 


3.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일본은 백인이 아시아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인종 과학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도 아시아인이었으니까요. 


외형적으로 차이를 찾기 어렵고 또 오히려 신체적으로는 골격이 작기도 했던 일본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종적 우월성을 확인할 수 있는 혈액형 인종 계수는 훌륭한 '과학적 도구'였습니다. 


4. 

3년간 영국, 브라질, 인도의 학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특히 정성을 들였던 부분이 이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별도 Panel로 구분되어 4 문단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계속 읽고 확인하며 신중히 하지만 명확히 쓰려고 애를 썼습니다.


1918년 Lancet에 나온 논문으로 인해 시작된 인종주의 과학의 문제점을 다루는 이야기를 2022년 Lancet에 쓰는 일이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Impact factor가 202로 전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저널인 만큼, 이런 고민을 감당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인종은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기에, 인종차별은 일제 강점기 조선과 동아시아를 포함해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고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보건학계에서 백인에 의한 흑인 차별을 제외한 나머지 인종차별 연구는 매우 적기에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5.

관련한 거의 모든 논문을 읽었지만, 의학을 공부하고 통계/역학을 주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보건학자인 제가 과학사에 해당하는 이 글을 쓰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온라인으로 만나 뵙고 자문을 해주셨던 서울대 정준영 교수님, 문장을 함께 검토해주셨던 KAIST 전치형 교수님, 최종 글을 하나하나 함께 읽어주셨던 고려대 윤태웅 교수님이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었고, 논문에서도 인용했지만 부산대 현재환 교수님의 연구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6. 

Open Access여서 누구나 다운로드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에 원문 링크합니다. 많이 읽어주시길.


Devakumar D, Selvarajah S, Abubakar I, Kim S-S, McKee M, Sabharwal NS, et al. Racism, xenophobia, discrimination, and the determination of health. The Lancet. 2022;400(10368):2097-108.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22)01972-9/full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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