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는 너무 착한 척 해. 진짜 피곤해.”
쉬는 시간, 수빈이의 뒷자리에서 들려온 목소리.
익숙한 친구들의 말투였다.
분명 수빈이를 향한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정면으로 말하지 않았다.
‘착한 척이라니…’
수빈이는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가만히 숨을 죽였다.
가슴이 쿵쿵 울리고, 눈물이 맺혔다.
‘나, 그냥 잘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순간, 어젯밤에 썼던 메모지가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귤 한 조각이 되어주고 싶어.”
귤 한 조각이 누군가에겐 위로였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귤 껍질조차 거슬리는 존재였던 걸까?
그날 오후, 수빈이는 혼자 운동장을 걸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오래전 혼자 놀던 놀이터에 도착했다.
흙먼지 묻은 미끄럼틀 아래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나대로 잘하고 있는 건데…”
작은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그리고는, 수빈이는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오늘은 귤 껍질이 너무 두껍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벗겨내기로 했다.
눈치를 보며 쌓아온 말들, 애써 웃었던 표정들…
다 벗겨내고 나니, 진짜 내 마음이 보여.
나는 그냥,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아이일 뿐이야.
그날 밤, 수빈이는 친구들에게 예전처럼 웃지 않았다.
대신 솔직하게,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불편했다면 미안해. 나도 완벽하진 않아.
그냥 나답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야.”
그 말에 대답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표정이 살짝 변한 걸 수빈이는 느꼈다.
누군가의 귤 껍질을 억지로 벗기기보단,
스스로 벗겨낼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도 용기라는 걸.
수빈이는 이제 조금씩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