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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재 Oct 12. 2020

부록: 할머니 대화록

아흔살 치매 할머니와 나누었던 생생한 대화

사실 할머니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관련된 꽤 많은 양의 영상을 촬영해 두었다. 다큐멘터리는 만들지 못했지만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덕분에 할머니와의 대화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살아있는 할머니와의 대화는 책 속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나의 성찰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화들은 책을 쓰면서 그대로 들어간 것도 있었지만, 분량과 내용, 반복되는 것으로 들어가지 못한 대화들이 있었다. 그렇게 책에 들어가지 못한 대화의 일부를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었다. 사실 영상을 얼마나 돌려 보았는지 말투와 톤까지 생생하다. 도란도란 할머니와의 일상이 조금이나마 느껴졌으면 좋겠다.








2018.02.12

"겨울에도 내복하나 안입고 빤스바람으로 사는 세월이 왔다."

"할머니 이거 바지야.."

"바지여 이게? 그런거 물어보지도 말고 가르쳐주지도 말어. 가르쳐 주지도 말고 물어보지도 말어."


2018.02.24

"이렇게 해고 살다가 결혼해서 시엄니 시아버지랑 어케 사니?"

"안살건데."

"시엄니 시아버지랑 안살어? 안살지 살지 어떻게 알어."

"엄마아빠랑 살면 살지. 절대 안살어."

"여자는 남으 집 가서 새끼 하나 둘 낳아야 돼."

"아니야. 안그래."

"시방은 안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새끼를 낳아야해."

"내가 남의집 새끼 낳으려고 태어난건 아니잖어."

"아니여. 그럼 그냥 이렇게 살어? 그러면 끝이 없어. 여자는 남으집 가서 새끼는 두놈은 낳아야 하는거여. "

"할머니, 그러면 내가 남의집 가는게 아니라 다른 집 남자를 우리집으로 데려와서 새끼 낳으려고 할게 ."

"하이고, 아효 모르겠다.그렇게 말하면"

"할머니도 결혼해서 힘들었잖어."

"아휴.. (절레절레) 애 하나 낳기도 얼마나 힘들은지 알어? "


2018.03.30

"할머니 나 누구야?"

"이재, 그것도 모르는줄 알았어? 아직 그건 알겄다. 이재는 알겄어."

"할머니 안씻어? 이제 씻자."

"구찮아."

"구찮은데 콩은 어떻게 골라."

"아침에 대강 씻어서 자고 내일 하자."


2018.04.11

"그때는 국민학교도 안갔어."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떻게 된건지 몰러. 그때 못간거 지금 후회하면 되어? 그럼 나하고 큰애들은 하나도 안갔어. 우리 엄마도 안갔어. 더군다나 그때야 뭘가니. 나도 못갔는데."

"할머니 아빠는 갔어?"

"아부지? 어떻게 된건지 몰러. 그때는 다 안가서 몰랐고, 왜 안갔는지도 몰러."

"근데 할머니 졸려? 말하면서 눈을 감어."

"어떨 때는 근력도 없고, 기운이 없어서 뜨고 있기도 싫어. 눈 뜨고 쳐다볼 생각도 안난다 이거여."

"할머니, 그러면 그냥 드러 누워."

"드러 눕는게 난거같아? 앉아서 조는 것 같아도 앉아 있는게 더 나. 너는 앳적에 아직 애기라 몰러. 아직 애기라 몰라서 그려."


2018.04.12

"할머니 지금 몇살이야?"

"나 예순 몇이니? 나이도 잊어버렸나. 생각이 안나."

"할머니 아흔 하나야."

"무슨 아흔 하나야? 지랄하고 자빠졌네."


2018.04.15

"이거 뭐여. 우유여?"

"응. 드셔"

"(꼴깍꼴깍) 맛난다. 시원하다."

"할머니 청포도도 드셔."

"너는"

"나는 먹었어."

(1시간 뒤)

"이재야, 청포도 이거 내가 다 먹었다. 맛있어. 두 꼭지 따먹었어 너 좀 줄걸 그랬나봐. 하나만 먹었을 때 왔으면 줄걸."

"나도 먹었다니까, 할머니."

"다 먹고 왔니?"




2018.04.29

 할머니가 이제 백일 된 내 동생을 안고 있는 사진을 할머니에게 보여드렸다.

"할머니 이거 누구야?"

"이거 애기는 누구여. 얼른 모르겠네. 이거는 나 아니여? 이 애기는 생각이 안나."

"이거 내 동생 도현이잖아."

"이게 도현이여? 도현이 애기적이여? 시방 도현이여? 도현이같지 않으네. 애기는 같은데.."


또 다른 사진을 뒤적거린다.

"이건 누구여."

"도현이"

"이것도 도현이여?"

"엉"

"이 이거 애기는 도현이여 이것도? 이건 너여? 돈만 주면 이렇게 해와 사진관에서?"

"요새는 사진 이런건 돈도 안들어."

"돈 안들고도 그냥 해줘어? 안해주지. 그렇잖어. 조금이라도 내야지. 아주 안내는건 아니잖아."

"음. 찍는 건 공짜여."

"요즘에는 어째 또 그러니?"



2018.05.15

"할머니 머해. 왜 그렇게 귀를 만져."

"이재야, 저녁 안해도 먹니?"

"엉. 할머니 지금 또 귀에서 소리나?

"귀에 뭐?"

"귀에서 소리나냐고!"

"아 가진 소리 다난다. 귀에서도. 꾕가리소리도 나고. (괴로움) 그러니까 못듣지.  아 죽겠다니까. 가진 짓 다혀. 귀에서도. 가진 소리 다나고. 아휴. 근데 해 넘어 갔니? 해 떨어 졌어?"

"응"

"지금도 빗방울 해니?"

"지금은 안와."

"나 보고 있지 말고 너는 볼일보고 해. 나는 눈감고 드러 누울려."

"알겠어."

"넌 안써늘혀? 정갱이 다 드러내고, 아휴. 안추운가벼. 난 추워. 이불도 이렇게 덮은게 나아."


2018.07.18

"할머니! 내 이름 뭐야."

"뭘해?"

"내 이름"

"네 이름? 둘째 손녀딸 아니야?"

"내 이름!! 나 누군지 말고."

"어..얼렁 안나오네."

"그럼 할머니 이름은 뭐야."

"내 이름? 이종례"

"자 다시 내 이름은 뭘까?"

"아.. 뭔가?.. 아.."

"그럼 내 언니 이름은 뭐야. 첫째 손녀딸 이름말이야."

"아휴 얼른 안나오네 왜. 아....흐아........"

"할머니,  나 누구야?"

"너 이재아니야?"

"맞아! 생각 났구나."

"그래, 이제 생각이 난다! 이재! 우리 아들 딸 아니여?!"


2018.07.20

"너들 빨래도 하게 되고.. 예전에는 그전에는 빨래도 방모건은 찌들면 비밀실에서 쌂아야돼. 그래야 때가 쏙 빠져. 지금은 가끔 가다 삶아도 깨끗하다 이거여. 때가 쏙 빠져. 좋은 세월이야 빨래 하기도. 앞으로 느들 더 애들은 더 살기 좋겄어. 그지? 시방도 그런데. 난 나 이렇게 될지 몰랐다. 예전마냥.. 그러니 얼마나 편하겠니. 예전에는 다 그냥 빨아서 풀어서 손질해가지고 꼬매고.. 그러니까 바빴어. 시방은 바쁘질 않아. 빨래도 그렇게 안하니까. 옷을 그렇게 안해입으니까. 그러고 그전에는 옷도 그렇게 시들었나. 꺼멓고 불떼서 밥하고 그렇고 옷도 더러워.. 시방같지 않고. 시방은 불을 그렇게 떼니? 뭐.. 깨끗하지 뭐여. 그래서 빨래도 찌들고 새까맣지 않고 떼가 안지거나 그러진 않어. 시방은 빨아서 웬만치 입고 삶으면 깨끗해 빨래도. 빨래도 쉽잖어? 옛날 같지 않다 이거여."


2018.07.21

"할머니, 이거 카메라 눌러봐"

"이거 눌러봐! 이거?"

"눌러?"

"자 봐바. 이거 할머니가 찍은거야!"

"시방? 세상 참 신기하네. 이런거 사는거 비싸지 않어?"

"안비싸."

"안비싸?"

"할머니 이건 영상이야. 할머니. 이거 한 번 눌러봐."

"이거?"

"자, 이거 할머니가 한거야 봐봐."

"이거 내가 한거여? 그런거 비싸지 않니? 싸? 우쩐일이니.."

"할머니 이런거 요새 다 갖고 있어. 초등학생도."

"요새 다 갖고 있어? 요새 초등학생도 다 갖고 사고 있어? 시방은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없나봐. 옛날에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이 없나봐. 그치?"


2018.08.14

"할무니 나 누구게."

"니가 누군지도 모르는지 알어? 이재를. 손녀딸을."

"치,맨날 모르자너."

"하도 오래 살면 정신이 막 ...... 왔다갔다혀. 오래 살고 그냥 그려는..거"


"할머니 뭐해?"

"나 데려다줄려고? 그래서 왔니?"

"또 어딜가! 여기가 우리 집이야!!"

"그려!! 나 좀 데려다줘!!"

"어딜"

"저 아래!!!!!! 아래.."

"아래에 갈 때 없어 할머니. 여기가 우리 집이야."

"왜 갈 때가 없어? 어서 우리 집으로 가 데려다줘. 가서 오줌도 노코 가게.. 언능 일어나라."


2018.10.03

"할머니 나 누구야"

"진수 애미 아니야?"

"엥? 아니야."

"그럼."

"이재."

"이재? 너 정희아니여."

"정희가 누구지"

"정희가 진수애미지 누구야."

"내가 진수애미라고?"

"너. 진수애미."

"할머니 내가 왜 진수애미야. "

"그땐 그렇게 불렀어 왜그런지"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할머니 딸이 아니고 손녀!! 손녀딸! 나는 할머니 손녀딸이잖아."

"딸을 손녀딸이라고?"

"그래. 내가 왜 딸이야. 손녀딸이지! 진범이 딸!"

"아니, 왜 또 진범이 딸이야. 미친년 지랄하네."

"그럼 진범이 딸은 누구야"

"진범이 딸은 걔 누구여. 이재잖어."

"그래. 이재. 내가 이재잖어."

"니가 이재였어?"

"맞아. 알겠지? 나는 이재야."

"너는 정희지. 옛날 향순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싫어했었어. 그래서 다시 지은거야. 아버지가 좋다고 한거로. 너는 진수애미, 정희."

"응..알았어."





2019.02.05

"할머니, 설날이야"

"오늘이..설날이야? 그것도 몰랐다. 그것도 몰랐어. 설날인지이.......하오 그것도 몰랐어. 왜 안죽..고 이렇게 사냐. 너무 오..래 사러어. 오녜, 육녜,, 오녜, 육녜 다 갔나.. 나.. 다.. 갔어? 내또래들 다 갔어? 다 갔니?"

"안갔어."

"안갔어? 살았어? 나는 나만 ..죽으면 되는줄 알았지. 한..번도 아오니까."

"할머니처럼 힘들대. 오는게 힘드시대 다."

"내가.. 내가 못가니까. 옛날..옛날에 말이여.  그렇게, 안댕기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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