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재 Oct 15. 2020

번외편 : 이 이야기 속에 악인은 없다.

책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2)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았다. 누적조회수가 대략 20만이다. 공유된 것까지 포함하면 아마 더 될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고 댓글을 남겨주었다. 댓글을 남기는 과정은 사실 쉽지만서도 꽤나 귀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수고스럽게 댓글 창을 클릭하고, 타이핑을 하고 엔터를 누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댓글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었다. 어쩌면 그 댓글 덕분에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까지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구나.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가슴 따뜻한 글들을 보며 힘을 얻기도 했다.


동시에 적지 않은 수가 꽤나 불편한 댓글이었다. 그런 댓글에는 굳이 대응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와 우리 가족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니까 상처받지도 않았다. 사실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글로 인해 비판의 화살촉이 남성 가족구성원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손녀딸이 쓰는 치매 일기, 이 이야기에는 악인이 없다.


글 자체가 가족구성원 중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남자들의 서사를 풀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가부장제의 중심이 되어버리며 많은 혜택과 권한을 가졌지만 동시에 책임감과 부담이 분명 존재했다. 누구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애써온 아빠였다. 할머니의 글을 쓰며 아빠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대화를 하며, 완전한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방관만 하는 줄 알았던 아빠는 사실 가부장제 안에서 반복되는 여성노동의 굴레를 인지하고 있었다. 누나, 여동생, 어머니,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다만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잘못한게 딱 하나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일 거다. 아마 이것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견고한 가부장제를 지탱해 왔던 중년 남성들이 가져야 할 부채감이 아닐까?


가부장제라는 가해자 없는 피해자의 이야기 안에 진짜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호랑이 같던 할머니의 시어머니도, 할머니를 노인학교에 가지 못하게 한 할아버지도, 장례식장에서 조차 아들만 찾던 아빠도, 방관하고 침묵하던 남자형제들도 악인은 아니다. 이면에 담긴 마음을 알고 나니, 그런 시대에 태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의심하지 않으며 살던 모습을 마냥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세대의 중심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바뀔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말하고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려야 한다. 가부장제의 흔적을 닦고, 지워내기 위해. 동시에 나 또한 윗세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의 말이 아닌,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논의를 시작하고 싶다. 그 변화의 속도 차이가 '세대차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또 다른 갈등을 만들 지언정,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 08화 번외편: 그렇게 나는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