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겨울, 경기도 안성 어느 마을 윤씨네 집안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부모는 조선시대 백성으로 태어나,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의 피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에는 3.1운동을 잇는 전국민적 학생운동인 6.10만세운동이 있었고, 1년 뒤에는 광주 시내에서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자 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으로 시작된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있었다.
아마 당시에는 트위터도 없었고, 페이스북도 없었으니 조용한 시골마을에 살던 그 아이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거다. 아이는 자라며 한국말을 못하는 일본 순사를 간혹 보았지만, 무서워서 피해다닐 뿐이었다.
아이는 학교가 가고싶었다. 글을 배우고 싶었고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여자가 공부를 하냐며 그 아이의 부모는 일찌감치 포기시켰다. 아이는 농사일을 배웠고, 손이 야무져 꽤 소질이 있었다. 그 아이가 17살이 되던 해에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대한민국은 광복을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전쟁이 일어났다. 그 아이는 역동의 시대 속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 아이는 얼굴도 잘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시모와 시부, 시누이와 함께 살며 몇 년은 딸만 낳는다며 온갖 시집살이를 당했다. 그러다 1960년 여름이 끝나가는 계절,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그게 나의 아버지다.
2018년의 중심에 살고 있는 20대의 나는 1928년에 태어난 그 아이, 나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의 가족'이라는 바운더리에는 부모님과 형제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포함되었다. 이게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다닌지 얼마 안된 후였다.
학업때문에 집을 나와 산지 8년이 지난 후 나는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평생 '맏며느리 답다는' 포동포동함을 유지하던 할머니는 뼈만 앙상했고, 검은 색의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던 할머니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여전히 숱은 많으시다.) 그러나 과정 속의 할머니와 함께하지 못했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던 할머니는, 내가 자란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지 1년정도 되었다.
역사책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가 살아온 생애 또한 우리의 역사며 나의 역사일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의 기억과 생을 흘러보내기엔 너무 슬프다. 할머니가 조금 더 온전하실 때 대화를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나를 위해, 내 욕심에 기록하기 시작한 이 글은 할머니의 과거와 나와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담을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