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처음으로 마카롱을 드셨다.
마카롱을 선물받았다. 꽤 유명한 집이었는지, 파티시에의 정성과 노련함이 느껴졌다.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겨있던 마카롱과 함께 들어있던 카드는 맛과 그 마카롱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내 머릿속에 있던 마카롱은 '부드럽지만 딱딱한' 디저트였다. 하지만 그때 먹었던 그 마카롱은 부드럽고 말랑했다. 이 마카롱이라면 할머니도 드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에게 남은 이는 아래에 딱 6개뿐이다. 모든 저작 활동을 이 6개의 이로 하신다. 사실 전에는 틀니를 착용하셨지만 이젠 이마저도 관리가 힘들어서 사용하지 않는다. 어금니가 아니기 때문에 남아있던 이의 역할은 주로 음식의 절단이다. 이제는 노련함이 생기셨는지 대부분의 음식은 잘 드시지만, 역시 딱딱한 음식을 드리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작은 마카롱을 다시 4 등분해서 할머니에게 드렸다. 할머니는 아마도 마카롱을 태어나서 처음 드셨을 거다. 마카롱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물으셨다.
- 이게 뭐여?
- 응, 프랑스 과자야 프랑스 과자.
할머니를 보면 점점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신다. 감정이 표정이 되어 얼굴에 나타난다. 마카롱을 드시면서도 그랬다. 마치 어린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표정, 그리고 진심으로 '맛있는' 표정이었다.
- 프랑스 과자? 그게 뭐여~?
하면서 하나 더 입에 넣으시며 물었다.
- 마카롱이라는 거야. 할머니 맛있어?
- 응. 달짝지근하니, 아주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할머니가 단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사실 종종 빵을 사 올 때도 그랬다. 어른들은 초코와 크림이 들어간 빵보다는 팥앙금이 들어간 빵을 더 좋아할 것이라 지레 추측하고 그런 '고전 빵'을 한 뭉탱이 사 왔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약 15년 이상을 한 집에서 살았는데, 할머니가 어떤 맛의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다.
- 이거 얼마여?
할머니는 항상 무언가를 사다 드리면 가격부터 묻는다. 항상 그랬다. 일어나면 밥이 있는지, 쌀이 있는지부터 물어보시고, 무언가 사다 드리면 얼마인 지부터 물어보신다. 할머니의 자식 5형제가 넉넉하게 먹을 쌀이 없어 보리를 한껏 섞어 밥을 짓고 고구마와 감자로 배를 채우던 그 시절부터 그러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흰쌀밥'은 탄수화물 덩어리라며 건강을 위해 보리를 밥에 섞어 먹고, 감자는 다이어트를 위한 음식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돈과 밥걱정을 하신다.
- 이거? 3,000원이야.
- 뭐? 이 작은 게 3,000원이나 한다고?
할머니 반응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던 나는 솔직하게 금액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깜짝 놀라신다.
- 할머니, 이거 선물 받은 거야. 걱정하지 말고 많이 드셔. 맛있지?
할머니는 다시 마카롱의 달달함에 취하셨다.
응 아주 맛있어. 아주 달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내가 오래 살다 보니 별걸 다 먹어봐. 별걸 다 먹네.
작은 마카롱을 드시며 오래 살아 별걸 다 먹어본다는 할머니. 절대적 빈곤의 시대를 겪었던 할머니의 마카롱은 어떤 맛이었을까? 그 맛의 무게는 어느 정도 일까.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아빠는 할머니의 3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첫아들이었다. 한창 뛰어놀던 그 시절 아빠는 늘 할머니가 주는 밥의 양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럴 때 할아버지는 꼭 마지막에 배부르다며 밥 한 숟갈을 남겼다. 그리고 그걸 늘 아빠를 주었다. 그때는 밥조차 마음껏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60년 후에 밥보다 비싼 프랑스 과자를 마음껏 먹게 될 줄 아셨을까?
내일은 마카롱 몇 개 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