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티 Sep 16. 2023

11년 만에 재회한 우정

핀란드에 정착한 그녀와의 하룻밤

11년 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감정이 설렘에서 긴장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만나기 두 시간 전, 비행기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이나 어색함이 쌓였으면 어떡하지. SNS로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긴 했지만 직접 만나는 것보다 찐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렇게 서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잠깐잠깐 안부로 확인하며 지내온 세월들. 20대에 잠깐 이방 땅에서 만들어 놓은 우정으로, 우린 그렇게 세월을 관통하며 그 우정의 명백을 가늘지만 길게 이어오고 있었다. 마침 핀란드에 11년만에 오게 됐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정보다 하루 먼저 헬싱키에 도착했다. 


핀란드 특유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보니 진짜 헬싱키에 도착했다. 친구는 10분 후 도착할 것 같으니 잠깐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저쪽에서 그녀가 나올까? 아니 반대편에서 나오려나? 여기저길 잠깐씩 둘러보며 긴장감을 누른다. 친구를 만나다는 게 이리 긴장되다니. 그만큼 우린 너무 오랜만에 만난다. 잠깐 긴장이 풀릴 무렵 내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Long time no see!" 우린 서로를 끌어안았다. 좀 전의 긴장감이 무색하게 그녀는 너무나 그대로였다. 까무잡잡한 피부, 천진난만한 미소, 가녀린 몸, 얼굴에 비해 살짝 큰 안경까지. 한편으론 기뻤다. 그녀가 변하지 않아서. 세월을 관통한 그녀의 모습을 마주했더라면 많이 슬펐을 것 같다. 하지만 크게 변하게 딱 하나 있었다. 그녀가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는 것. 그녀의 남편과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녀가 도착하기 전 괜히 이리저리 둘러본다. 무민을 보니 드디어 핀란드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베리의 천국, 너무 그리웠던 쌀빵


잠깐의 경험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보며 느낀다. 당시 나는 교환학생, 그녀는 베트남인으로 핀란드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당시 지금의 남편도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한다. 한 때 베트남 친구들과 파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친구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사실 난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사진을 보니 진짜 그가 그녀의 옆에 있었다. 핀란드에 공부하러 온 친구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핀란드에 정착했다. 아이까지 낳아 잘 키우는 걸 보니, 당장은 핀란드를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당시 이곳에서 아무것도 없이 함께 공부하고, 함께 파티도 하고, 함께 교회도 갔던 친구는 이제 제법 어른이 다 되었다. 이곳에 만족해하는 일도 있고, 집도 마련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정을 꾸렸다. 실제 나이로 나보다 2살이 어리지만, 나보다 훨씬 어른 같은 친구를 보니 많이 낯설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매우 좁은데 귀엽다.


그녀의 배우자도 그녀와 성품이 닮았다. 자상하고 배려가 넘친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하루를 보내기로 했고, 우린 공항에서 나와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인적 없는 길을 한참을 통과한 후,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 달랑 두 동정도 놓여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역시 핀란드답다. 주위에 있는 거라곤 숲이다. 아파트의 베란다로 나아가면 눈앞에 나무들이 펼쳐져 있다. 교환학생 당시엔 때론 핀란드가 너무 따분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이젠 이런 고요함과 자연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자연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그녀가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설렘과 긴장감이 편안함으로 바뀌었던 순간이었다. 앞으로 핀란드에서 펼쳐질 나날들이 기대가 된다.

초록초록한 핀란드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느껴보는 초록의 절정
하룻밤 묵게 된 친구네 게스트룸
처음 본 내 곁에 와 잠을 청하는 사랑스러운 갱쥐


이전 02화 K-직장인들의 북유럽 여행 준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