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12) AI는 마케팅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광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면, 종종 연예인을 보게 되는 일이 있다. 광고 모델로 말이다. 그럴 땐 주변 반응이 재밌다.
“와~ 실제로 본다고?” “나도 가서 구경하면 안 돼?”
응 안돼. 나도 첨엔 신기했다. TV에서나 보던 셀럽을 직접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이게 바로 업계포상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엔 현실의 벽에 쾅! 하고 부딪히게 되지만 말이다.
“다음 주는요? 그다음 주는요? 아니, 그다음은 월드투어잖아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어렵 싸리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면, 다른 일정들이 줄줄이 틀어져 버린다. 이 시대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면 이 시대에 가장 바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 상품 출시 시점에 맞춰, 보도자료, 프로모션, 홈페이지, 검색광고, 배너광고 등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척척 준비하고 있는데 광고만 미룰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여기저기 사정하며 속을 태우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다. 소위말해 현타가 온다.
한 간에는 ‘모델이랑 진짜 닮은 사람을 섭외해, 후반작업 때 얼굴을 조금 만지면(CG로 편집하면) 쥐도 새도 모른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업계 괴담 같은 말이지만, 한국 광고계의 후반작업 스킬은 가히 세계 최고급이다. 그래서 곽범을 정우성으로 만들어 준다 해도 어쩐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래도 그건 고객을 기만하는 거니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더구나 곽범은 정우성과 진짜로 안 닮았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상상이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AI기술 덕분에 광고 모델이 직접 현장에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얼굴을 재현해 낼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 덕분이다. 물론, 최근 ‘딥페이크’ 기술이 언급되는 건 주로 부정적인 기사에서다. 지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등 상상하기도 어려운 범죄 영상이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함과 함께 가짜뉴스의 소스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 명백한 범죄이며, 강력한 제도적 제한 장치를 마련해야 함을 시사한다. 사회적 윤리의식도 함께 성숙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앞의 사건들은 딥페이크 기술이 고등학생도* 이용할 수 있는 쉽고 편한 기술이 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진보한 기술은 오랜 시간 고착화 되어 왔던 업계의 제작 환경을 크게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광고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스탭이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곧 높은 비용이 발생함을 의미했다.
* "딥페이크 검거 인원 중 청소년이 95% 이상… 혐의 입증 시 형사처벌"
그러나 AI 기술은 이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는 모델이 현장에 없어도 마치 있는 것처럼 재현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재현해 내는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상상 속 캐릭터로 표현해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심지어 발리우드 풍으로 재해석한 정우성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기술이 진보하며 이렇게 웃긴 영상이 등장하고 있는데, 마케터가 가만히 앉아 낄낄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제작 환경이 극적으로 변한다는 말은 곧 이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또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잘만하면 어그로를 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케팅 좀 한다는 브랜드라면 이제 정말 참을 수 없다. 지금부터는 실제로 딥페이크 기술을 직접 적용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국의 제과업체 Cadbury가 인도에서 진행한 캠페인을 살펴보자. 이 캠페인에서는 머신러닝 기반의 AI 기술을 활용해, 인도의 유명배우 ‘샤루크 칸’의 얼굴과 목소리를 학습시켜 이른바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냈다. 코로나 때문에 가게 운영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캐드버리가 소위, 마케팅 템플릿을 만든 것이었다. 소상공인들은 가게가 위치한 지역과 제품 카테고리, 가게 이름을 입력하면, 샤루크 칸이 등장해 가게 홍보를 해주는 영상이 만들어진다. 소상공인은 해당 영상을 활용해 SNS광고를 하거나, 문자 광고를 보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자면, 내가 운영하는 골목 식당에 유재석이 등장해 가게 홍보를 해주는 격이랄까.
아직까지는 결과물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명 배우가 우리 가게를 소개해준다는 게 어쩐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할 수 없는 골목 상인들에게는 희소식 아닐까. 이러한 방식을 통해 고객의 관심을 끌고 맞춤형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마케팅 플랫폼을 활용해, 총 13만 개 이상의 광고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가 업주라도 호기심에 한 번은 해볼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비슷한 캠페인 중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13만 명의 업주들의 마음속에 캐드버리가 큰 인상을 남길 수 않았나 싶다. 대체 제과회사가 이걸 왜 하나 싶지만, 결국 고객들의 마음속에 경험만큼 강렬한 인상은 없다고 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의 조회수를 합하면 총 3,000만 건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상을 활용한 가게들은 평균 35%의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러한 홍보효과를 경제적으로 치환해 보면, 약 600만 루피(약 1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효과만큼이나 그 의도가 좋았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이 캠페인은 가장 저명한 글로벌 광고제로 손꼽히는 칸 라이언즈에서 Creative Effetiveness 그랑프리를 수상할 수 있었다.
한 때 유병재가 수백 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생일 축하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무려 2시간이 넘는 영상인데, 친구 이름이 나오는 부분만 잘라서 활용하라는 의도다. 몇 시간에 걸쳐서 유병재 그걸 녹화했을 생각을 하니, 피식 웃게 되는 영상이다. 문득 그 영상이 생각난 건, 그가 캐드버리 영상을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가 AI로 생일축하 템플릿을 만들어 뿌리지 않았을까.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훨씬 더 큰 장난을 쳤을 것도 같다. 물론, 그가 몇 시간 동안 고생고생하며 녹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언더아머의 사례를 살펴보자. 언더아머의 광고 모델이자 권투선수인 ‘앤서니 조슈아’는 경기 일정 문제로 새로운 광고 촬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가 계속되는 시즌이나, 훈련기간이 이어질 경우 스케줄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나 역시 과거에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모델로 한 캠페인을 담당하면서, 촬영 스케줄 조율을 못해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언더아머는 스케줄을 마냥 기다리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AI 기술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로 했다. 마케팅의 타이밍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에 촬영된 조슈아의 모습을 AI로 학습시키고, 조슈아의 이미지와 음성을 생성했다. 그렇게 신규 광고를 만들어 냈다. 바로 아래 영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영상이 공개되고 나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신규 영상을 제작한 제작사에서 영상과 함께 크레디트(제작에 참여한 사람 리스트)를 공개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AI 학습에 사용된 ’ 과거 광고‘를 연출한 감독이 문제제기를 했다. 자신이 연출한 장면이 새로운 광고에 등장하는데도, 크레디트에 본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실 광고 영상의 저작권은 언더아머에게 있기에 저작권 상 문제가 될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독은 저작권 문제가 아닌 도덕적 문제제기라며 일축했다. 결국, 해당 크레디트에 과거 광고 감독 이름도 올리는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AI가 콘텐츠를 생성하는 데 있어 법적 소유권과 도덕적 인정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 아닐까.
이 사례는 AI가 광고 제작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창작물의 저작권과 오리지널리티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서 AI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인간 창작자와 AI의 경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지 싶다.
* 참고 기사 https://www.mad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0032
이러한 ‘AI와 저작권’의 이슈는 디즈니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디즈니는 배우를 대체해 가상의 캐릭터가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AI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테마파크에서도 활용하려는 의도다. 디즈니는 이를 통해 장기적인 캐릭터 관리와 콘텐츠 생산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겠지만, 배우들 사이에서는 AI가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참고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842
결국, 2023년에는 미국의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두 조합의 동시 파업은 무려 63년 만의 일어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방증 아닐까. 어쨌든 이들이 거리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직업적 위상 실추와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AI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봐, 작가들은 AI가 각본을 작성하게 될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의 우려는 분명 일리가 있다. AI는 광고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 더블’**이라 불리는 기술을 통해 배우 없이도 캐릭터를 스크린에 재현해 낼 수 있다. 또한 AI는 시나리오의 초안작성부터, 복잡한 CG작업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완전히 밀려나는 시대가 올까? 그건 알 수 없다. 지금은 그야말로 과도기로 보인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가 그 속도를 따라잡고 적절한 윤리적, 사회적 기준을 설정하는 게 중요해지는 시기로 보인다. 사실, 이는 단지 엔터테인먼트 산업뿐만 아니라 AI와 연관된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 디지털 더블: 디지털 더블은 실존하는 인간을 3D 스캔 또는 3D 모델링으로 제작한 것을 이야기한다. 디지털 더블은 모션캡처 데이터의 반영을 통해 실제 사람과 비슷한 움직임을 가지며 때로는 VFX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대역 배우의 역할을 수행한다.(출처: 서영호 등(2021), 디지털 휴먼의 현재와 미래, https://www.kibme.org/resources/journal/20220617111456714.pdf)
지금까지 딥페이크를 활용한 브랜드의 사례를 살펴봤다. 캐드버리의 경우, 인도에서 의미 있는 캠페인을 통해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더아머나 디즈니의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닥뜨리기도 했다. 딥페이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군가는 성과를 만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 것이다.
마케터로서 우리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 주목해야 할 건 뭘까. 바로 이 변화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게 핵심이다. 우리는 변화에 저항하는 대신, 그 흐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AI를 통해 그 누구의 얼굴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럼 우리는 과연 누구의 얼굴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얼굴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건 우리 브랜드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글을 통해, 고민할 수 있는 인간만의 특권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