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부산 3일차 - 성화봉송을 하다

by 베루

오전 주자 집결지는 어제와 동일한 부산 시청, 오후 주자 집결지는 해운대 문화회관이라 주자 운영팀은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 나는 부산 시청으로 갔다. 똑같은 주자 집결지 (CP. Collection Point)에 이틀 연속 간데다 특이한 주자가 없어서 아침부터 오늘 일기는 뭘 쓰나 고민했다.


사진이나 찍자


오늘 오전 삼성 주자들 중 상당수는 디지털 프라자 사장님들이었다. 그 중 한 분은 어제 밤 11시에도 뭘 입고 가면 되는지 묻는 전화를 하시고, 집결 시각이 7시 반인데 6시 40분부터 전화를 하셔서는 두번째 통화라 친밀하게 느끼셨는지 “미쓰송 안녕하세요.” 하는데 웃겨 뒤집어질뻔 했다. 미쓰송 ㅋㅋㅋ


삼성전자 남부 어떤 팀에서 응원 온 모습


오전 주자들이 뛰고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귀갓길 배웅까지 한 후 해운대 문화회관으로 갔다. 미래도시 느낌이라 내가 좋아하는 해운대! 부산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인데, 만약에 진짜로 살게 된다면 해운대에 살고 싶다. 너무 외지인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해운대 문화회관은 그런 내 생각에 불을 지펴줬다. 문화 공연과 행사, 교육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래 사진의 목록은 하루치에 불과하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11월 목록은 약 12pt 폰트로 A4가 꽉찬 분량이었다. 와우!


11월 6일 해운대 문화회관 프로그램


별 일 없이 하루가 흐르는구나 싶더니, 마지막 구간 주자들이 셔틀을 타고 슬랏으로 이동하기 약 10분전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 온다고 했던 주자 한 명이 못 온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이유는 오는 길에 남자친구와 싸워서 울고 불고 하다 광안대교에서 집으로 돌아갔다나 뭐라나. 남자친구와 싸웠어도 성화봉송은 하고 다시 싸우든 풀든 하면 되지 ㅠㅠ


그래서 급히 내가 대체주자로 투입됐다. 사실 캐리어가 꽉 차있어서 짐을 늘리기가 싫어 가능한 한 후반부에 뛰고 싶었건만 - 성화봉송 주자에게는 유니폼이 지급된다 - 성화봉송 6일차에 뛰게 되다니. 얼른 백팩에 넣고 다니던 원데이 렌즈를 찾아서 꼈다. 나는 눈이 조금 나쁜 편인데, 이 회사에 온 뒤로는 렌즈를 끼면 눈이 너무 피곤해 안경을 주로 쓰고 다닌다. 이번 출장에서도 기본 안경이다. 하지만 성화봉송을 하는 특별한 순간에 안경을 쓰고 달릴 순 없었다. 그러나 나는 스탭이고 대체주자로 뛰게 될테고 언제 뛸지 모르는 신세라 그제부터 백팩에 렌즈를 하나 넣고 다녔다. 치밀한 나^^


렌즈 끼고 주자 유니폼으로 환복하고 탈의실에서

다른 파트 스탭이 렌즈 낀 나를 보고는 “안경 벗으니까 너무 예쁘세요! 왜 안경 끼고 다니세요?” 하길래 쑥스러운 척 “눈이 아파서요. 호호” 했지만 속으론 생각했다. ‘제가 좀 이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지금까지 주자들 뛰는 모습을 보니 해가 지고 난 뒤에 뛰는 게 불도 잘 보이고 예뻐서 나도 저녁에 뛰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해진 후에 뛰게 되었다. 슬랏으로 가는 셔틀 안에서 내 앞과 뒤 주자들과 어떤 포즈로 토치 키스를 할지도 짜고, 급히 가족과 친구들에게 생중계 링크를 보내고, Facebook에도 포스팅을 했다. 멋진 광안리를 지나 영화의 거리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위에 내가 뛸 슬랏이 있었다. 급히 대체주자로 뛰게 되어 그냥 일하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막상 셔틀에 타고나니 흥분됐다!


셔틀에서 내린 직후

내가 뛴다고 팀 사람들과 스탭들이 응원을 세게 해준다고 해서 신났고, 구경 나온 주민들, 관광객들도 많아서 더 신났다.


주민들 + 스탭들과 함께

주자 유니폼을 입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다들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슬랏에 내린 후 실제로 뛰기 전까지 약 5~10분이 금방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카라반이 지나가고, 응원단이 나와서 함께 구호도 외치고,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양 사람들의 사진 요청에 응하다보니 성화가 왔다.


BA들과 파이팅 외치는 모습

실제 성화봉송이 시작되기 약 한 달 전, 리허설이라 할 수 있는 하루짜리 테스트 이벤트를 했었다. 그 때는 불 안 붙은 성화봉을 들고 더블 슬랏(double slot) - 안 온 주자의 앞 또는 뒤의 주자가 200m*2를 뛰는 것을 의미. 노쇼 (no show) 발생 시 최후의 대응책 - 을 뛰는 주자 역할을 했었다. 400m를 다 가서야 팔이 좀 아픈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뛰기 전부터 팔이 조금씩 후들거렸다. 아무래도 연소통 무게가 상당한가보다.


#133 주자에게서 불을 받는 모습


내 바로 앞 주자와는 팔 하트를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얌전히 하트 모양을 만든 후 달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함께 뛰는 플레임 서포터가 계속 천천히 뛰라고 해서 속도를 줄이길 여러 번. 뛰기 전 친구들이 준 미션이 몇 가지 있어 연예인들이 TV에서 몰래 사인을 보내듯 나도 해봤다. 손으로 파이팅, (지금 머리가 귀밑 2cm인데) 머리 넘기기, 양 옆 길가의 시민들에게 손 흔들기 등등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션은 아니지만 도중에 한바퀴 핑그르르 돌기도 했다. 이것 저것 하다보니 다음 주자가 보였다. 다음 주자는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학생이었는데 낯을 가리는지 셔틀에서 다소 긴장한 모습이길래 이런 포즈를 하자고 제안해봤다.


둘다 신난 모습


무사히 토치 키스를 마치고 픽업 셔틀에 올라타니 내 앞 주자였던 #133 아저씨가 무지 아까운 표정으로 귀여운 항의를 하셨다. “나랑은 왜 그런 포즈 안하고! 저 포즈 누가 짰소? 삼성 아가씨 (미쓰송에 이어 삼성 아가씨 됐다) 가 짠거요? 나랑도 하지!”


유투브로 중계를 보던 친구들도 마지막 포즈에 빵 터져 카톡방이 “ㅋ”로 도배되어 있었다.


대학 동기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고 별 일 없을 것 같았던 하루가 예상 못한 성화봉송으로 거하게 마무리 됐다.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은 아래 링크에 가서 #134를 찾으면 된다.


https://youtu.be/oNKp-jkGreI



내일은 드디어 첫 휴일이다. 울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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