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켈란 Aug 26. 2023

[단편소설] 화영의 배신-12

화영의 고백

화영의 고백


‘아름다운 금붕어도 더러운 물에 살면 빛을 잃고 색이 검게 변한다. 깨끗한 물로 옮겨와 애정으로 보살펴주면 다시 아름다워진다’


일본 영화 ‘금붕어 아내’에서 금붕어 가게 주인 하루토가 하는 말에 화영이가 떠올랐다.


“난 와인을 마실 자격도 없어”


“내 삶은 왜 이렇게 얄궂을까”


“갈 길을 잃어버린 거 같아”


가난해진 화영은 소주를 마시며 하소연을 했다. 속상했다. 왕성했던 자존감이 조막만 해졌고 늘 취해있었다.


안 그래도 주식 시장은 매일 하락가를 갱신하는데, 욕심을 부려 선물 거래까지 손을 댔다.


선물거래는 도박성이 많이 있고 예상이 틀렸을 경우에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영원히 보유할 수 없는 자산이다. 주식과 달리 선물은 보유기간이 정해져 있는 시한부 상품이다.


선물까지 망하자 화영은 바닥까지 망가졌다.


“다시 정민오빠를 만날까?”


딸 가진 유부남 전 남자 친구는 이별 후 월세와 용돈을 주지 않았다. 당연한 걸. 이성을 잃은 화영에게 쓴소리를 했다.


“불륜은 죄야. 또 그런 소리하면 너 안 봐”


“집부터 알아봐. 지금 상황에서 월세 350만 원은 말도 안 돼. 사치야”


화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았다.


“일단 가서 놀자”


후배 무나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노들섬’에서 ‘서울드럼페스티벌’을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무료입장이라 인파가 몰렸다. 사람은 많고 드럼 두드리는 소리는 정신없고 낮에 마신 술의 취기가 확 올랐다.


후배에게 인사만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람 숲에 파고들었다. 동네친구들과 한창 공연을 즐기는 무나가 보였다.


“오! 선배 왔어?”


“어. 근데 우리 이미 취했다. 조금 있다가 가야 할 거 같아”


흐린 기억 속의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화영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이 말라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 마시며 택시를 호출했다.


금요일 퇴근시간.


30분을 기다려도 잡히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서둘러 오겠다는 내 남자. 사랑이다.


주말 놀이공원만큼 복잡한 ‘노들섬’을 어렵게 비집고 빠져나갔다. 이미 다리가 풀린 화영을 반쯤 업고 공원 입구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정말 오빠 같은 사람 없어. 사랑이다”


“나도 다정한 남자 만나고 싶다”


“오빠는 언니에게 늘 한결같아. 부러워”


“일 잘하는 부자 훈훈한 남자. 부럽다. 정말”


혀도 살짝 풀린 화영은 남편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그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취했나 보다.라고 생각됐다.


익숙한 자동차가 깜빡이를 켜고 우리 앞에 섰다.


“오빠!”


차 문을 열고 나온 남편을 보고 화영이 벌떡 일어나 아이처럼 반겼다. 빨리 차 빼라는 주차 요원 등살에 서둘러 화영을 뒷좌석에 구겨 넣었다.


집에 무사히 데려다주고 갈 계획은 틀어졌다. 취하면 화영은 주특기를 부린다.


“우리 집에서 와인 마시다 가면 안 돼요? 제발~”


그렇게 한강 야경을 보며 셋이 마주 앉았다. 와인에 약한 남편은 술을 마다했고 여자 둘은 막차를 시작했다.  


금세 비워버린 와인 두 병. 취했다.


“나 졸려. 먼저 잘게”


엉금엉금 침실로 기어 들어가 침대에 올라갔다. 번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옆에서 화영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다정히도 쓰다듬었다.


“오빠. 밤새 못 잤어?”


“집에 가서 자려고. 가자”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할 말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오빠의 침묵.  


날이 밝은 아침 9시.


화영이 일어났나 보다. 아이폰이 울렸다.


‘언니~언제 갔어?’


‘5시에 깨서 왔어. 좀 괜찮아?’


‘언니~우리 해장술 할까?’


‘뭐?’


‘깼는데 언니가 없어서 쓸쓸했어. 토요일인데 아침부터 보면 좋지!’


’좋다!’


몸과 마음이 가난해진 화영이가 많이 공허하구나 싶어 조용한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오전 11시. 강남구 삼성동 오래된 맛집 ‘중앙해장’에서 곱창전골에 소주를 마셨다. 새벽까지 함께 있던 아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오빠가 별 말 안 해?”


“무슨 말? 밤새 잠을 못 잤더라. 지금 집에서 기절 한 채 자고 있어. 무슨 일이었어?”


“아니. 나도 어제 기억이 전혀 안나”


화영은 정색을 하며 소주잔을 비웠다. 소주 각 1 병을 비우고 식당에서 나왔다. 화영에게 카페를 갈까 했지만 급 피로가 몰려온다는 아이는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언니~ 다음 주에 또 만나!”


바쁘게 두 손을 흔들며 택시에 급하게 타는 화영. 그 아이를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그렇게 허무했다.


하루가 지난 일요일 저녁.


남편과 식사를 하러 외출을 했다. 전 날 화영과 만나 해장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주 앉은 오빠의 표정과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만나지 마. 이제”


“응?”


잘못 들었나 싶어 물었다.


“괘씸한 아이야. 더 이상 정 주지 마”


“상황을 설명해야 알아듣지”


괜히 짜증을 부렸다.


“자기 자러 들어가자마자 내게 고백하더라. 좋아한다고. 그래서 우리 17년 인연을 우롱하지 말라했고 마음 다 준 언니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지”


“…………”


믿을 수 없어 아무 말도 안 나왔다. 믿고 싶지 않았다.


“취해서…”


애써 명분을 만들며 말끝을 흐렸다.


“자기 마음 아플까 봐 말 아끼려고 했는데. 그날 밤 걔 멀쩡했어. 내가 화내니까 수긍하며 방으로 들어가더라”


“정말이야?”


“질이 안 좋은 얘야. 솔직히 처음부터 느낌 별로였어. 자기가 좋아해서 같이 본거지…”


눈물이 벌컥 났다.


씨발년.

이전 13화 [단편소설] 화영의 배신-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