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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Jan 11. 2024

당신, 깃털, 하늘

아주 오래전 창공을 누비던 독수리가 있었네. 

날카로운 입 부리는 굳게 닫혀있었고

기품이 넘치는 검은 깃털은 햇빛을 머금으면 더욱 빛이 났네. 


독수리는 부지런히 세상을 비행하며 아프고 힘든 자들을 내리 살폈어. 

배고픈 자에겐 발톱으로 수확한 사과를 건넸고 

강철처럼 단단한 입부리로는

그들의 몸과 마음에 박혀있던 가시를 빼내줬네.


어느 화창한 날 

평소라면 구름과 같이 하늘을 흘러가고 있었을 독수리는 

먼지를 지르밟으며 지상에 내려왔네. 

그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로 

자신의 머리까지 꽁꽁 싸매고 꿈쩍도 하지 않았어.


하늘의 검은 등대가 이젠 땅 위의 검은 바위가 돼버렸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일과 문제에 차여사는 사람들은 

독수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간혹 그들이 바쁘게 걷다가 독수리가 발에 차일 때면 

어디서 굴러온 커다란 바위인 줄 알고 

그것을 들어서 도로 옆으로 치우려 했지. 

그때마다 무례한 손길을 뿌리치러 독수리가 날갯짓했고 

그것들은 겁을 먹고 줄행랑쳤어.


태양과 함께 모두를 살피던 검은빛이

어울리지 않은 땅 위에서 웅크린 후 영겁의 시간이 흘러갔네. 

독수리의 깃털은 잿빛으로 변했고 생에 대한 의지가 빠져나감에 

몸집은 쪼그라들었네.


대다수는 말했어. 

"저 독수리는 고기를 못 찾아서 굶주린 거야." 

"비행기와 부딪혀 날개가 부러졌을 거야." 

추측만 할 뿐, 하지만 그 누구도 독수리에게 말을 건네려 하진 않았네.


독수리를 진심으로 걱정한 몇몇은 아주 조심스럽게 날개를 들춰봤어.

그 안에는 심해보다 깊은 독수리의 어둑한 눈이 있었고

세상의 모든 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독수리에게 책과 물 한 모금 

그리고 서로의 마음 한편을 내줬고 

독수리가 가진 슬픔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눈물이 땅에 스며들도록 도왔네.


작지만 소중한 그들의 마음이 모여 광대한 초원을 이뤘고 

조용히 손으로 건네준 위로는 따뜻한 벽난로가 되어 

독수리가 그토록 필요로 했던 은은한 온기를 전달해 줬네. 


그렇게 잿빛의 깃털은 흑진주처럼 기품 있던 검은색을 되찾았어.


독수리는 예전처럼 창공을 누벼. 태양을 머금은 날개를 활짝 펴고 말이야. 

마음으로 독수리를 품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고 

가뭄에 메말라 갈라진 땅을 적셔주는 축복의 빗물처럼

그 눈물은 검은색 자국을 남기며 서로의 심장에 스며드네. 


독수리의 깃털과 그들의 심장은 예전의 생기 넘치던 색깔을 되찾았어.


조용히 그들을 내려다보며 원을 그리던 독수리가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구름 위로 솟구쳤어. 

힘찬 움직임의 뒷길을 뒤따르던 검은 깃털을 

바람결이 정성스레 감싸서 땅 위의 친구들 앞에 가져오네.


그들은 깃털을 두 손으로 감싸며 생각했어. 

세상 어떤 존재보다 태양과 닮은 그 독수리는 

자신이 응당 있어야 할 장소로 태양의 옆자리를 택했다고. 

그곳을 찾기 위해 시작한 날갯짓으로 생겨난 이 깃털은 

숭고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증표라고.


그들은 깃털을 바라보며 생각했어. 

세상 어떤 존재보다 태양과 닮은 그 독수리는 

자신이 응당 있어야 할 장소로 태양의 옆자리를 택했다고. 


그곳에 닿기 위해 시작한 날갯짓으로 생겨난 이 깃털은 

숭고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없는 선언이라고.


그들은 이 깃털을 펜으로 삼아서 일기를 쓰기로 약속해. 

독수리와 심장과 같은 색깔을 가진 자들이 써 내려갈 

연민과 사랑의 향을 간직한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담은 일지를.

 

그리고 언젠가 독수리가 찾아왔을때

그것을 읽어주며 서로 웃을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릴 거야.



이전 06화 마지막으로, 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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