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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Jan 09. 2024

마지막으로, 나를 소개합니다.

단편

9월의 어느 평일. 짹짹, 아침이 왔음을 새들이 알리는 소리가 민수의 8평 남짓한 원룸에 스며든다. 두 겹의 창문과 커튼이 걸러낸 새소리는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만큼이나 미세했으나, 최근 이틀간 5시간밖에 못 잔 민수의 청각에는 지진소리만큼이나 선명했다. 예상치 못한 소음에 휴식을 방해받은 거북이의 목이 등껍질에서 솟아나듯이, 눈을 뜰 생각이 없던 민수의 눈도 눈꺼풀을 걷어내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원룸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리창은 두꺼운 남색 암막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커튼은 감수의 탈출을 감시하는 경비처럼 외부 세상과 민수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다. 고요하게 위압적인 커튼을 비집고 들어온 몇 점의 햇살이 비추는 것은 원룸을 부유하는 새까만 먼지들 뿐이다. 민수는 답답함에 심리적인 갈증을 느끼고 물 한 컵 대신에 침을 꼴깍, 두세번 삼킬 뿐이다. 고개를 약 45도 정도 돌려 원룸의 꼴을 보니 어릴 때 낭송했던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원룸과 창세기전의 세상이 겹쳐 보일때 쯤 찾아온 가벼운 재채기가 그를 생각의 열차에서 끌어 내린다.  


하나님은 빛을 만들어 어둠을 쫓았으나, 원룸의 절대자는 그것엔 관심이 없다. 빛은 존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들을 비추고 세상에 드러낸다. 피곤한 세상에서 숨고 싶은 존재들은 다시금 밖으로 끌려 나온다. 드러난 존재를 바라보는 이들은 멋대로 판단하고, 정의하고, 해석한다. 그렇게 세상은 존재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수많은 오해를 만들고, 멋대로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민수는 이틀간 빛을 허락하지 않고 지냈다.


지금 그의 얼굴을 비추는 누르스름한 빛은 대학교 축하 선물로 받은 후 9년이나 지난 고물 노트북의 액정 빛이다. 사각형의 프레임에는 ‘이력서/지원 학원: XYZ학원, 지원직무: 영어강사(전임)’라는 머리글의 문서가 떠있고, 그 밑으로는 지나치게 간단한 민수의 인적사항이 실수로 풀려버린 실타래처럼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다.


약 48시간 전, 민수는 영어강사로 일하는 학원의 마감 청소를 시작했다. 빗자루를 쥘 때쯤, 원장은 평소처럼 서걱거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민수 선생님, 저 좀 봐요.”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는 민수의 목은 감기 기운 때문에 갓 구운 마들렌처럼 부어 있었다. “선생님.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돼요.”. “네?” 민수의 쇳소리처럼 탁한 목소리가 원장실의 공기를 흔들었다. “선생님이 담당하던 중3학년 영어반의 원생이 오늘 반절 넘게 그만뒀어요. 아마도 건너편의 YZ영어학원으로 옮긴 거 같아요.” 원장은 천천히 두 손을 책상 한가운데 모았다. “걔들 학원비로 월급을 드렸는데.. 이젠 그럴 수 있는 돈이 없어요. 선생님은 고정급으로만 월급을 받으셔서 저희도 부담이 컸거든요. 죄송하지만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세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민수는 물러설 수 없었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방적인 해고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미주알고주알이 오갔다. 하지만 30분만에 예정된 패배를 맞이한 민수는 조용히 짐을 챙겨서, 학원을 나섰다.


20분 후, 냉담한 세상에서 두문 벌려 그를 반겨주는 유일한 존재인 50번 버스가 그의 앞에 도착했다. 버스의 품에 안전히 착석한 민수는 매일 느끼는 아늑함에 긴장이 풀린다. 항상 옆에 앉아있는 ‘대중교통 수면증’이라는 이름의 승객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민수를 바라본다. 그 승객은 천천히 민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민수는 뜨거운 물을 향해 떨어지는 꿀 한 스푼 처럼 꿈속으로 수직 낙하한다.  


꿈속의 민수는 20살이다.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여 고향을 벗어나 첫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풋풋한 대학생인 그의 얼굴엔 사춘기의 징표인 여드름이 얼굴 구석구석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옆에 앉은 여자아이는 민수에게 궁금증이 많아 보인다. 이름이 뭐니, 전공은? 왜 이 대학에 왔어? 같은 진부한 질문을 가득 품은 민수는 답을 생각해본다. ‘내가 왜 이 대학을 왔을까, 왜 이 전공일까? 그 이유는 점수가 맞는 대학 중에 부모님이 가라고 정해줬기 때문이지.’ 민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여자아이는 자신이 원해서 전공을 정했고, 진학을 위해 얼마나 주체적으로 노력했는지를 읊어댄다. 이미 쓰인 책을 자연스레 읽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그녀의 모습에 민수는 주눅이 들고, 천천히 물에 가라앉는 조약돌처럼 침묵을 지킨다.


너무 오랫동안 닫아버린 입에 거미줄이 쳐지기 직전, 버스는 이름 모를 바닷가에 도착한다. 움츠린 어깨에 가방을 들쳐 매고 버스를 벗어나니 그의 눈엔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28살의 민수가 보인다. 그는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얼음처럼 차가운 철 의자에 앉아있다. 정장 민수는 자신의 앞에 앉은 머리가 반쯤은 벗겨지고 재미없는 은색 안경을 쓴 40대의 남자에게 자신의 소개를 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김민수'는 경영학에 일찍이 흥미를 느껴, 이를 공부하여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A대학 경영학부에 진학한 능동형 인재였다. 감흥없이 민수의 이력서만 내려다 보는 안경남은 버스의 그녀가 던졌던 진부한 질문들을 던진다. 하지만 이럴 수가! 정장 민수의 적절한 분량의 답변에는 28년간의 인생의 희노애락이 맛깔스럽게 비벼져 있었다. 대학생 민수는 돌멩이였는데, 정장 민수는 인생을 득도한 돌부처인 것일까? 인상적인 답변을 들은 40대 안경남은 안경을 고쳐 쓰고 정장 민수를 잠시 바라보고, 옆 지원자에 비해 모자란 자격증 개수와 낮은 토익점수의 이유를 물어보며 2라운드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민수는 준비한 답변으로 반격한다. 성적 대신 사람을 더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에 교우관계에 시간을 투자했다고 하는 순간, 그의 두피와 겨드랑이에서 땀이 솟아났고 양발의 발가락들은 모기에 물린 것처럼 베베 꼬인다. 면접관은 거짓말을 일삼는 대졸자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신체적 징후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살아있는 거짓말탐지기’로 불릴 정도로, 면접에서 사회초년생들이 저지르는 거짓증언을 정확히 집어내는데 능숙했기 때문이다. 굳이 땀에 흥건히 젖은 민수의 겨드랑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호인'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민수에게서 느껴지지 않는것도 민수의 거짓말을 판결하는데 충분한 정황증거였다. 일주일 후, 면접관은 ‘존재하지 않는 민수’를 이야기한 죄로 약 4줄 정도의 불합격 통보 문자를 민수에게 선사했다.


계속해서 면접 경험을 쌓아갈수록, 민수의 거짓된 자기소개는 더욱 정교해졌다. 결국 민수는 중견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진짜 민수’에게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능력 있는 제약영업사원의 필수조건은 잘 작동하는 입과 끈기뿐이니까. 영업의 세계에 입장한 민수에게 ‘소개’는 직업적 사명과도 같았다. 약을 팔기 위해 항상 새로운 의사와 약사를 만나야 했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명함과 카탈로그를 전달하며 말한다. “제 소개를 먼저... 이 약은 처음 소개받으실 거예요... 이 약의 효능을 소개하자면...” 그렇게 민수는 약을 팔기 위해 무엇이든지 했고, 사내에서 능력자로 명성을 쌓아갔다. 하지만 명성은 민수의 건강과 자존감을 대가로 가져갔다. 민수는 오직 약을 팔기 위해 의사와 매일 참이슬 한병 반을 비워야만 했고 주말엔 약사의 자식들에게 무료로 영어 과외를 해줬다. 열심히 살던 영업사원 민수는 장마철 폭우를 뚫고 거래처를 향하던 차 안에서 액셀을 밟은 채로 기절한다. 지나친 음주로 인한 고혈압과 만성피로가 그를 저승의 입구까지 밀어 넣은 것이었다. 회사는 더 이상 그가 필요 없었고, 민수에겐 가슴과 다리에 깊이 박힌 불행이란 이름의 철심과 퇴직금 몇 푼만이 남았다.


민수는 살기 위해 제약회사를 그만뒀고, 역시 살기 위해 보습학원에 영어강사로 지원했다. 학원의 위치는 오래된 전통시장과 홍등가의 잔해 사이였다. 구인공고의 자격요건에는 ‘근면 성실, 토익 800점 이상, 아동 성범죄 이력 없음’뿐이었고, 민수는 그런 심플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대기업 면접처럼 거창한 자기소개를 지껄이기에는 기운이 없었다. 무심하지만 진실되게 자신을 소개한 민수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쉴 때는 자기계발도서를 읽던 성장추구형 인재에서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로, 책과 전시회를 사랑하던 인문학적 교양이 넘치는 대졸생에서 숨쉬는게 취미이자 운동인 평범한 남자로 말이다. 처음으로 면접 때마다 민수를 꽁꽁 싸매던 촌스런 포장지를 걷어내니 민수에겐 다소 싱거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학원 강사라는 직책을 맡는다.


월급은 반토막이 났지만, 민수는 영어강사의 삶에 꽤 흡족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민수를 대하는 태도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민수에게 약을 팔아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담배나 술을 좋아할 거 같다는 편견섞인 말도 꺼내지 않았다. 세상 단순한 애들은 숙제 한번 안 해온 걸 봐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할 뿐이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민수에게 “선생님 못생겨서 쳐다보기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할 때도, 민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악의 없는 순진무구함은 민수의 피부에 두껍게 쌓여있던 사회인의 때를 천천히 벗겨내고 있었다. 사회인의 체질에서 회복할수로 민수의 자신감은 점점 쌓여나갔다. 학원 동료들은 그에게 “민수 씨, 처음 왔을 때보다 눈빛이 살아났어. 몸에 좋은 거 알면 나도 알려줘.”라고 농담 삼아 말했고, 민수는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다시 원룸이란 현실로 돌아온 그의 몽롱한 정신과 눈동자는 초점이 나간 카메라 렌즈처럼 사물과 세상을 뿌옇게 인식한다. 갑자기 뇌가 흔들리는 어지럼증을 느낀 민수는 무릎 위에 있던 노트북을 거칠게 바닥에 내던진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행위가 지겨워졌다.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보여주는 것에 질려버린 것이다. 민수는 원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을 속시원히 내뱉어 본 적이 없었다. 직장동료는 나약한 민수보다는 별말 없이 영업실적을 채워오는 민수를, 예전 여자 친구는 시집을 읽는 민수보단 로코물을 즐기는 민수를,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은 영문과에 진학하고 싶은 민수보단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부를 선택한 민수를 좋아했다. 그렇게 주변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맞췄고, 그럴때만 자신에게 웃어주는 주변을 보는 것이 민수의 존재 이유였다. 그나마 5개월 간의 영어강사로 살아온 시간만이 어렴풋이 ‘진짜 민수’를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과 기회는 원장이 허락해야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금 선택받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짓눌린 민수는 쓸모가 없으면 진짜 ‘자신’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 순간, 커튼 틈새로 비추는 햇빛이 민수의 왼쪽 눈을 덮는다. 갑작스러운 빛의 무단침입에 민수가 바라보는 하늘은 순식간에 하얘진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기다란 어떤 것이 매달려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손이었다. 엄지 손가락이 없는 적갈색의 거칠고 딱딱한 그 손은 민수를 향해 뻗어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내 손을 잡아. 그러면 널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어. 그분에게 너의 마지막 소개를 하러 가자.”

 

민수는 빛에 홀려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격렬하게 몸을 파닥거린다. ‘나를 이해해줄 그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이 끔찍한 자기소개가 마지막일 수 있다면,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민수가 평생을 바라 왔던 것일지도 모르는 그 소원이 눈 앞에 있다는 생각에 커튼, 창문, 방충망을 차례로 열어젖힌다. 세상을 막아내던 창벽을 허물고 나서야 속옷만을 입고 있는 민수의 온몸에 햇빛이 당도한다. 마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사회의 때를 벗길 때처럼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두 눈을 감은 민수는 “그래요.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눈물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새까만 손을 향해, 까치발을 한 채로 두 손을 허공에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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