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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촌네글다방 Jan 02. 2024

마음

에세이

 마음이란 이름의 물이 있어. 

 평소 그 물의 두께는 발끝에 살짝 치일 정도로 얇으며, 잔잔히 찰랑거리지. 

 

 물은 계속 움직이고 흘러. 그러다가 그 무한의 행위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유리 어항을 찾아 나서. 자신도 편히 지낼 수 있고,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어항 말이야. 


 저기 맘에 드는 어항이 보이네. 적당히 굴곡진 형태에 입구는 매끄럽고 가느다란 게 딱 취향에 맞아. 물은 갓 만들어진 용수철처럼 힘차게 입구를 향해 뛰어올라. 어항 내부에 묻어있던 먼지를 싹 쓸어내 주고, 순식간에 어항의 중심을 잡아줘. 잔잔한 그 느낌이 어항도 싫진 않나 봐. 꽉 찬 그 느낌에 서로 행복함을 나눠.

 

 물은 찰랑이고 흐르는 게 원래의 성질이야. 물은 그것을 거부하고 싶지만, 어쩌겠어? 존재는 그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본질적 행위가 있잖아. 가끔 물은 아무 이유도 없이 유리 어항을 흔들어. 그럴 때마다 어항의 마음은 철렁철렁 소리를 내. 안락했던 그 꽉 참이 자신을 구속하던 사슬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물은 그것을 벗어던지고자 다시 뛰쳐나가. 이번엔 안에서 밖으로.

 

 물은 함께 고래를 키워 보자고 약속했던 어항을 뛰쳐나왔어. 바깥 공기가 닿자마자 물의 중심은 까맣게 변했고, 겉은 불기둥처럼 적갈색을 띠고 있었어. 어항은 순식간에 과열되어 산산조각 나 흩어지고, 본래 물이 위치하던 바닥을 가시밭길로 만들어. 불은 보이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위해 화롯불처럼 눈을 번뜩여. 생명을 품었으나 이젠 앗아가는 위험하고 기피해야 할 존재로 변모한 거야. 


 어항에서 벗어난 그 불은 하늘만이 자신을 막을 천장인 것처럼 끝없이 솟아오를 생각에 흥분해. 그러나 곧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태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 자신과 어항이 키우던 물고기, 인공 해초, 그리고 어항조차도 자신이 다 집어삼켜버렸으니까.

 

 아, 어리석은 불! 자신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 어항뿐이었다는 걸, 그걸 파괴하고 나서야 깨달은걸 보니 말이야. 그 어리석음에 불의 볼기짝이 화끈거림과 동시에 몸을 감싸던 적갈색은 더욱 빨개져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해. 연소를 위해 필요한 탈(奪) 물질, 탈(脫) 사랑을 성취했으니, 암적색의 이글거림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어. 그렇게 불은 15초 후, 세상에서 종적을 감춰...


  불쌍한 어항. 생명의 그릇이었던 어항은 이제 분리수거를 기다리는 잔재물일 뿐이야. 그렇게 어항은 모든 걸 체념한 듯 보이지만 삶을 향한 의지는 그대로야. 그리고 물이 아닌 사람의 손길을 기다려. 자연은 어항을 파괴했으나, 인공적인 손길은 자신을 원래대로 복원시켜 줄 거라는 기대감을 꼭 쥔채로. 해와 달이 몇번 뜨고 졌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저 멀리서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왼손엔 빗자루와 쓰레받기, 오른손엔 테이프와 본드를 든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어항은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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