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맛있게 드세요."란 목소리와 함께
내 앞에 당도한 행성의 이름은 국산 팥빙수(2인분 1만 원).
행성의 명물인 먹음직스러운 빙수보다 먼저 나의 의식과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행성의 표면과
눈으론 발견할 수 없는 2종류의 '흰색'이다.
치약광고에 나오는 강박증 섞인 흰색 치아처럼
원래 너의 색깔이라고 강제된듯한 당위적 백색.
자신의 흠집을 요리조리 탐색하는 의심의 눈동자에
조명과 햇살을 솜씨 좋게 활용하여
송곳 같은 광선 빔을 발사하는 방어적 백색.
'허허, 요 그릇 봐라.
사람의 시선을 멀찍이 떨어트리는 방법을 알고
먼저 아름다움과 우아함만을 보여주는 걸 보니
썸네일로 어그로 끄는 법을 아는구나.
유튜브 하면 1만 구독자는 우습게 찍겠어?'
하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표지로 책을 판단하려는 경박스러움에 놀라
무지와 선입견에 가득 찬 정신머리를 세차게 편태질한다.
그 와중에 뜨거운 햇살은 얼음의 결정을 무너뜨리고 있다
맹탕이 되어가는 팥빙수의 가치는 만원에서 2백 원씩 하락한다.
멍청한 회의주의자가 품은 의심이 존재의 본질을 파괴한다.
이내 의심을 멈추고 낭만적인 돈키호테가 되기로 결심한다.
과감히 첫 술을 뜨자. 그리고 겪어보고 음미하고 판단하자.
성스런 은빛을 띤 숟가락을 움켜쥐고 행성에 착륙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