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촌네글다방 Jan 25. 2024

광주에서 오송으로

폭우로 인하여 열차가 20분 지연됩니다. 고객님의 양해 바랍니다.

기관사는 천재지변이 자기 잘못인 것처럼 수없이 양해를 구한다.

서로가 무안한 그 시간.


퍼 자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창문을 바라보니

꾸정한 강물이 다리 밑을 넘실

중간에 잡초 한 뭉텅이가 섬처럼 둥둥

흙탕물에 넘칠대는 머릿속의 불순물들은 나침반이 없다.

그저 두웅둥 부유하며 어딜가오, 어딜 가야 하오를 중얼댄다

주어는 무엇이냐를 되묻는 사이


스크린 속 너머 액정에 물이 씻겨내 버린 목숨 여럿이 떠있다.

산사태 때문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어르신과 아내분이, 흙에 파묻혔다.

디지털로 표현된 그분들의 죽음의 모양새는 명조체.

그저 내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숨으로

이진법의 비극이 내 폐와 가슴 한편에 들어왔다 나간다


그분들의 비극의 유효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에게나 너에게나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핸드폰과 두 눈을 꺼버리고

세상이 어지럽다는 문장을 곱씹는 것뿐.


그대들은 어딜가오, 나는 어딜가오...


이전 10화 적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