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현재 시간은 저녁 11시.
주위는 샤워 후 물기를 머금고 축 늘어진 내 머리카락처럼 어둡다.
지금 내가 우두커니 앉아있는 지름 약 40센티 정도의 의자 하곤
셀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거리에
달이 한 명, 묵직하게 날 지켜본다.
검댕한 숯불 끝에서 화르르 미동하는 불 한 움큼처럼
묘하게 나의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있는 존재.
이 고요한 어둠은 왜 의미가 있을까.
그건 내일 맞이할 그 사람
태양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달이 나지막이 내 눈썹에 속삭이기 때문이다.
햇빛이 가져오는 그 하얀 광채는
생명을 눈 뜨게 하고
내가 곱씹으며 사색할 존재들과
콧등을 스쳐 지나갈 인생의 1초를 억 겹으로 쌓아
기묘한 형체를 가진, 나만이 감상할 수 있는 석탑을 비춰주겠지.
그래서 수천 시간을 맞이했고, 맞이하고, 맞이할
멈춰버린 불꽃과 같은 이 시간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