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봄
어릴 때 했던 놀이 중 제일 재미있던 놀이는 학교놀이였다.
키도, 옷도, 표정도, 머리 모양도 조금씩 다르게 수십 개의 종이인형을 그리고 오린다. 아이들을 키대로 줄을 세우고, 짝을 만들어 주고, 이름을 붙인다. 반장을 뽑고, 시험을 보고, 채점을 해서 성적을 매기고, 소풍을 간다.
이 놀이는 꽤 방대하고 복잡한 놀이이다. 학교놀이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이들은 모두 성격도 다르고 공부 실력도 달랐다. 아마도 이런 놀이를 즐겨했기에 지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선생 놀이와 진짜 선생이 되는 일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 동화를 쓰고 공부를 하고, 운이 좋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생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글을 막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내가 주는 영향력은 꽤 크다. 나의 한 마디의 말, 표정 하나가 그들의 앞으로 글 쓰는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그 일을 할 땐 정성을 다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다.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 말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칭찬해 준 말 때문에 미술을, 연극을,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반대로 선생님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그 아이의 미래를 혼란스럽게 뒤흔들기도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처럼 집중하고 의지하고 있는 대상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느냐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러니 덕질러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덕질의 대상(덕체)이다. 그가 하는 말에 팬들은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그가 하는 말은 팬들의 삶과 생활, 마음과 몸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그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카카오의 '영혼의 말 한마디' 프로젝트(양준일은 천 명의 팬들과 함께 백 일 동안 매일매일 영혼에 도움이 되는 짧은 글귀를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했다. 그곳에서 '찢어진 오만 원 권'이란 비유를 든 적이 있었다. 많은 팬들은 그 말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빳빳하고 새것인 오만 원 권과 찢어진 오만 원 권 모두 가치는 같다. 하지만 찢어진 오만원의 흔적은 수많은 어려움을 통과해 온 표시이다. 그래서 찢어진 오만 원 권은 더 많은 이야기와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종종 슬픔과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이 나쁘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나누면 슬픔은 작아지고 행복은 커지니 함께 나누자고. 우리는 나누면서 서로 연결되고 하나가 된다고...
그가 노래와, 책과, 인터뷰와, 유튜브를 통해서 하는 말들은 진정성이 있고, 진솔하다. 모든 이야기는 그가 걸어온 삶에서 자석처럼 붙어서(유튜브 재부팅양준일 나와의 대화 편에 나온 비유이다. 그는 놀라운 비유의 장인이다) 가져온 것이기에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양준일이기에, 그가 하는 말이기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은 그이기에, 바닥을 치고 지하에 내려갔다 온 그이기에, 아이 우유를 사기 위해 소파 밑에서 동전을 찾던 그이기에, 젊은 시절 외면당하다 수십 년이 지난 50대에 다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그이기에 그의 말은 뜨겁고 진하고 아픈 맛이 난다.
누구의 말이 아닌 바로 양준일의 말이기 때문이다.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의 미국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매일매일 내려놓기 위해 애를 썼다고. 청소를 하고 서빙을 하면서 진짜 쓰레기를 버리면서 함께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폐기물 같다는 생각을 매일 버리려고 노력했다고. 과거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을 내려놓는 게 매일의 자신의 생활이었다고...
만약 어떻게 살았느냐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할까? 아마도 나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며 살았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하는 일이, 직업이, 사는 곳이, 사회적 위치가 자기를 규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의 답을 듣고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바라보고 향하고 있는 곳이 우리 보통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눈빛과 웃음과 태도는 보통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한 달 전까지 미국에서 청소와 서빙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양준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신도 스스로 변하기 쉽지 않은데 다른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일은, 더군다나 선하게 변하게 만드는 일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덕질을 하면서 나는 그의 영향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돌처럼 단단했던 마음이 말랑해지면서 얼어있던 감정들이 녹아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랑과 열정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요즈음이다.
나눔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사랑과 열정에 대해서... 그가 하는 말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덕질을 할수록 더 나은 사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그처럼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햇살 같은 그의 선한 영향력이 마음 구석구석에 와닿는다. 겨울 같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덕질을 시작한 뒤로 나의 계절은 매일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