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고수
어릴 때 전학을 여러 번 다녔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다섯 곳이었다. 거의 매해 다른 학교를 다닌 셈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새 학년과 새 학교는 같은 개념으로 생각되었다. 같은 학교에서 학년만 달라진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학을 온 학교는 서울이었다. 그전까지는 가장 도시적이고 세련된 아이였지만 서울에 와서는 가장 촌스럽고 유행에 뒤떨어진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 말투는 서울 말투가 아니었다. 묘하게 끝이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서울 말투. 억양 없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충청도 말투와는 다른 오르락 내리락 하는 서울 말투는 신기했다.
집에 오면 서울 말투를 연습하곤 했다. 친구들과 대화를 길게 오래 하는 걸 피했다. 충청도 말투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말하는 걸 좋아했지만 점점 과묵하고 조용한 아이가 되어갔다. 말을 할 때도 신중하게 조심조심 했다.
양준일을 떠올리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편안하게 말하지 못하고 서툰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이방인의 모습이...
양준일은 바이링구얼을 구사한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간 그는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냈고, 20대가 되어 가수를 하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언어가 발달되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영어로 말하는 걸 더 편안해하고, 영어로 말할 때 더 자신감 있게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앨범 전곡의 가사를 직접 쓰는 그는 모든 가사를 먼저 영어로 떠올리고 영어로 쓴 뒤에 한글로 번역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노래의 한국어 가사는 신선하고 독특하다. 어떤 때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흔히 쓰지 않는 단어와 문장들의 조합이 신선하고 때로는 그것이 시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문학은 흔히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고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준일의 가사나 책이나 혹은 그의 말은 문학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저절로 익숙지 않은 우리말을 사용하며 낯설게 하기를 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상담을 듣고(유튜브 '양준일재부팅' 프로그램에서 '양준일의 직끔상담소'를 운영 중이다. 메일로 고민을 받아서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말을 들으면 우리에게는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현실이 달라 보인다. 생각이 말랑말랑해지고, 세상이 낯설고 다르게 보인다.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고, 해결 방법이 보인다. 그래서 양준일 덕질러들은 그를 '현자'라고도 한다.
그는 자신이 두 언어를 쓰는 바이링구얼이기 때문에 우리말도 영어도 능숙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생각해서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을 자신도 가장 알아듣기 쉬운 방법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어렵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쉽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이다. 어렵고 난해한,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꼬여있는 생각과 문장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하수이다. 그는 의도치 않게 언어의 고수가 되어 버렸다.
덕질은 사랑이고, 사랑은 집중이다. 덕질러들은 덕질 대상에 온 마음과 머리를 기울여 집중하고 사랑하는 중이다. 그러면 그의 말과 생각이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앞뒤가 어긋나는 단어도, 맥락 없이 뛰어넘는 문장도, 지금 쓰지 않는 생소한 말도 뛰어넘어 그의 생각에 가 닿는다. 그가 외계어를 쓰더라도, 백 년 전 말을 하더라도, 아프리카어를 쓰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 이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덕질러들의 사랑의 힘이다.
오늘도 양준일을 읽고 해석한다. 신기할 정도로 투명하고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양준일 덕질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