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이야기>라는 책이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에요. 꽤 긴 영화인데 <라이프 오브 파이>도 인생작으로 칭함 받는 명작입니다.
도서 <파이 이야기> _이미지 출처: 구글
좋아하는 영화는 몇 번씩 보고 또 보고 그러잖습니까.
네. 중학생 시절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아, 벌린 채 보고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렴풋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죠. 왜 그렇게 입을 아, 벌리고 보고 있어! 그때 잠시 영화 속에 푹 빠졌던 정신이 돌아오며 제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요. 성인이 된 이후에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또 찾아서 보게 되었는데, 무려 러닝타임이 153분이더군요. 그렇게 긴 영화를 넋 놓고 보았다는 거죠.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에 비하면 뭐, 127분이니까 두 시간 하고도 7분 동안 엄청난 영상미에 푹 빠지실 수 있을 거예요.
라이프 오브 파이가 망망대해에서 일어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 맞죠?
재난영화나 모험 영화로도 분류가 되는데, 담고 있는 철학이 굉장해서 어느 장르에 붙여도 다 말이 될 것 같은 작품이에요. 몰입도와 긴장감이 정말 높은데, 그 이유는 사람이 잘 경험하기 힘든 낯선 사건을 만나기 때문이고, 관객 입장에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한 그 상황을 주인공이 하나씩 모면하고 있기 때문이랄까요. 저럴 때, 나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를 생각하며 두려움 속으로 함께 들어가게 되죠.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면, 여기저기 주워 들었던 지식이라도 얹어서 대책이라도 마련할 텐데, 사람이 정말 너무 생소한 공포에 맞닥뜨리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죠.
소년 파이도 그런 일을 겪게 되죠. 파이네 가족은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부지원이 끊겨 동물원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죠. 부모님은 캐나다로의 이민을 계획하게 되고, 드디어 큰 배를 타고 캐나다에 가게 됩니다.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과 함께 이동을 해야 해서, 몹시 큰 화물선을 타게 되었는데요, 그만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고 배가 침몰하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구사일생으로 파이는 구명보트에 타게 되었는데,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던 동물 중에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이 같이 구명보트에 탄 것을 알게 되죠. 사람은 파이 혼자라는 사실도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_ 이미지 출처:구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말도 안 통하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동물들이 사고를 당해 흥분한 채로 한 보트에 탔다니, 얼마나 무서울까요. 그것도 소년 혼자.
정말 무서웠어요. 파이 바로 눈 앞에서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고 먹히고를 계속하거든요. 그리고 서서히 나타나는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 덮였던 천 아래 뱅갈 호랑이가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그 장면이 공포의 하이라이트였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_ 이미지 출처:구글
호랑이라니.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혹스럽네요.
호랑이는 파이네 가족이 이사를 가기 전, 동물원 안에서도 한 번 등장합니다. 우리 안에 있던 호랑이와 파이가 만나는 장면인데요, 이때 호랑이 이름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었죠. 왜냐하면 호랑이를 동물원에 들여올 때 문서 작성자가 실수로, 사육사 이름 란에, 호랑이 이름을 적고, 동물 이름 란에 사육사 이름을 적어서, 호랑이가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달고 왔기 때문이에요.
사육사 이름이 호랑이 이름이 됐네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좁은 보트 안에서, 그것도 망망대해 위에서 호랑이와 맞닥뜨렸으니, 파이는 이름 때문에 웃겼던 에피소드조차 생각이 안 날 것 같습니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아요.
일단은 리처드 파커가 보트 안에 있는 다른 동물들부터 한 마리씩 먹어 치웠고, 배가 부르면 당장은 파이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조금의 시간은 벌게 되었어요. 그리곤 보트 안에서 ‘생존 지침서’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죠. 구명보트 안에 기본적으로 있었던 책이었죠. 파이는 이 지침서를 통해 조금씩 난관을 극복해 보려고 합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_ 이미지 출처:구글
생존 지침서라는 말이 흥미롭긴 한데, 그래도 보트 안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의 지침은 없을 것 같은데요? 부모님 생각이 간절히 날 텐데, 조언구할 부모님도 안 계시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의 생존 지침서는 파이에겐 거의 신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절실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게 될 때, 정말 막다른 절벽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사람이 어떤 심정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해요. 생존 지침서는 신기하게도 누가 어떤 상황에 처했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는데요. 낯선 곳에서 몸을 보호할 집을 짓는 법부터, 생존에 관련된 여러 지침이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망망대해에 떠있는 파이가 적용할 내용은 희망을 잃지 말 것,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되 헛된 에너지는 쓰지 말 것, 혼자서라도 자주 말을 할 것, 무료하면 절망이 찾아오므로 어떤 계획이든 반드시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움직일 것,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절대 먹지 말 것,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직접 마련할 것 등이었구요, 이외에 파도를 만났을 때 대처법, 짐승을 만났을 때 대처법 등, 파이에게 필요한 지침들이 꽤 있었어요. 정독을 한 파이는 곧 허기질 파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고 직접 낚시를 시작하죠.
생존 지침서가 있어 조금은 다행인데,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고독하고 막막했겠습니까. 밤 되면 아래는 시커먼 바다가 넘실대고 있을 것이고, 이 표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호랑이까지 버티고 있고, 소년이 겪기엔 너무 큰 고난을 당하네요.
파이는 허공에 대고 울부짖으며 엄마, 아빠라고 외치기도 해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파이는 지침서대로 잘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힘을 내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매일 일기도 쓰고 매일 기도도 해요. 이 영화는 끝없는 망망대해의 낮과 밤을 뛰어난 영상미로 보여주는데요, 펼쳐진 거대한 자연 속에 얼마나 인간이 하나의 점 같은 존재인지 그 막막함을 제대로 실감시켜줘요. 이미 명작이라고 수없이 손꼽힌 만큼 영상미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경이로움 자체예요. 관객은 영화 속 파이와 마치 함께 있는 것처럼 두려움을 실감하실 뿐 아니라 영상 속 자연경관이 주는 위력에도 압도되시고 말 거예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_ 이미지 출처:구글
파이처럼 엄청난고난을 겪으면, 나중에 어떤 문제가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호랑이를 어떻게 등장시킬 거냐, 하는 문제도 있어, 감독이 안 정해진 채 꽤 시간이 흘렀는데요. 이안 감독이 이 영화를 맡으면서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후반부에 파이는 멕시코 해안에 도착하는데요.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도착 즉시, 숲으로 달려가 버리자, 비록 무서웠어도 유일한 동행자였던 파커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파이가 오열하기도 해요. 그 장면이 참 인상 깊었고요. 입원한 파이가 보험담당자에게 지금까지의 여정을 들려주자 믿지 않고, 마치 정신에 문제가 생긴 사람으로 판단해버려요. 결국 파이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호랑이를 사람으로 바꿔 말했고, 그제야 사람들은 믿어요. -라고 지금까지의 이 모든 이야기는 성인이 된 파커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이었죠. 즉 지금까지 모든 여정이, 어떤 사람에게 들려주는 파이의 이야기였던 거예요. 그렇다면 이 여정은 파이의 지어낸 이야기일까요,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일까요? 당신은 파커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나요? 아니면 실제 호랑이였다는 것을 믿나요? 흥미롭게도 이렇게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