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두말할 것 없죠. 스티븐 킹의 소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명작이지 않습니까. 교도소에 울려 퍼지는 오페라. 진정한 자유. 정말 사람들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 진정한 명작입니다.
<그린마일>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예요. 배경 또한 교도소죠. 단지 쇼생크 탈출의 교도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를 뿐이에요. 2000년 3월 개봉작이지만 쇼생크 탈출과 마찬가지로 지금 봐도 전혀 손색없는, 소장 가치 충분한 작품이에요. 등장했다 하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인 배우, 톰 행크스가 주연이었어요.
영화 <그린마일> 톰 행크스 _ 이미지 출처 : 구글
정말 <쇼생크 탈출>과 공통점이 많네요.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에다 같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작품이고, 배경이 전부 교도소라니, <그린마일>에 더 큰 기대가 됩니다.
현재까지의 네티즌 평을 보면, 쇼생크 탈출은 100명 중 94명이 별 다섯 개를 줬고, 그린마일은 92명이 별 다섯 개를 줬어요. 다섯 개 이상의 별을 줄 수만 있다면 더 주고픈 영화죠. 한 감독이 여러 흥행작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나이트메어>, <프랑켄슈타인> 등의 흥행작까지 많이 보유해서 개인적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다 유명한 영화들이네요. <프랑켄 슈타인>도 정말 획기적인 작품이었죠. 담고 있는 철학도 대단했고. 이 글읽으시는 분중에 <쇼생크 탈출>과 <프랑켄 슈타인>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그 작품들도 찾아보셔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프랑켄 슈타인 적극 추천드려요. 버전이 많은데, 그중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그리고 아까 공통점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가 빠졌어요. 쇼생크 탈출 역시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톰 행크스였죠. 스티븐 킹과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톰 행크스의 인연이 보통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죽했으면 그린마일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한 폴의 노년 시절을, 당시는 젊었던 톰 행크스에게 분장까지 해서라도 맡아줄 것을 요구했다는데요. 나중에 분장한 톰 행크스와 따로 캐스팅한 폴노년 역할의 데브 그리어 배우를 비교한 후에는 데브 그리어 배우에 만족해서 톰 행크스가 노년 분장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품을 통해 그들의 신뢰가 더욱 돈독해졌던 모양이네요. 그런데 '그린마일'이란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아무래도 교도소 상황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은데.
죄수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의자가 전기의자인데요. 그 의자가 놓인 집행장소로 향하는 복도를 보통 라스트 마일이라고 해요. 죄수가 걸어가는 마지막 길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는데, 작품 속 배경인 교도소 E구역은 복도 바닥이 초록색이었대요. 그래서 E구역은 라스트 마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린 마일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바로 거기서 따온 그린마일이 영화 제목이 된 것이죠. 톰 행크스는 말씀드렸듯이 폴이라는 교도관 역, 마이클 클라크 덩컨이죄수 존 커피 역을 맡았어요. 이외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 배우들이 조연을 맡아 교도관과 죄수로 등장하게 됩니다.
영화 <그린마일> 스틸컷 _ 출처 : 구글
죄수가 많다면 그린마일을 걷는 장면도 자주 나오겠네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 이야기니 의미가 좀 남다를 것 같아요.
맞습니다. 폴은 특별히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만 관리하는 교도관인데, 집행일까지 그들이 삶을 잘 정리하도록 필요한 것을 돕는 일을 하고 있죠. 등장하는 죄수가 모두 사형수니 영화에선 그린마일이 자주 나와요. 전기의자에 앉는 죄수들에게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때 정말 많은 명대사가 탄생되기도 하죠.
영화 <그린마일> _ 이미지 출처 : 구글
아, 정말 명대사가 될 수밖에 없겠네요. 한 인간이 인생을 정리하며, 살아 숨 쉬는 순간에 마지막 하는 말이잖습니까. 한 명도 아닌 여러 사형수라면,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새겨지겠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서점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 있죠. 죽기 전에 남긴 백가지 말 같은 도서들 있잖아요. 그 속의 짧은 문장들도 참 마음을 울리는데, 이 영화에선 부분적일지라도 그들의 인생까지 조금씩 보여준 뒤 사형을 집행하니까 죽기 전 한 마디가 더 큰 공감을 줘서 슬퍼요.
작품 속 죄수가 살아서 마지막 걷는 길이 그린마일이라지만,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도 태어난 이후부터는 쭉 죽는 날을 향해 걸어가는 거니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우리도 매일 그린마일을 걷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명언을 해주셨네요. 마지막에 교도관 폴도 같은 말을 하죠. 108세가 된 폴이, 교도관으로 근무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가끔은 그린마일이 너무도 길게 느껴집니다.’라고 하거든요.죽음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고 한 이유는 108세까지도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인데요.
폴은 자신의 생명이 죄수 존으로 인해 연장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은데, 어째서 생명이 연장될 수 있었다고 믿는 걸까요?
죄수 존 커피는 쌍둥이 여자아이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흑인에다 덩치도 너무 큰 거인이라 교도관들은 처음부터 존을 난폭한 죄수 쪽에 분류해버리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폴은, 존이 온순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나아가 존이 쌍둥이 여자아이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누명을 쓴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까지 하게 됩니다. 어느 시점부터 죄수인 존은, 처음 들어오던 때와 달리, 억울한 자신의 마음을 다 내려놓고 평안해진 반면, 존이 누명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폴은 안절부절못하게 되죠. 존의 집행일이 다가올수록 폴의 불안함은 극에 달하는데요, 그때부터 오히려 케어 받아야 할 존 커피가, 폴을 케어하게 되는 반전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죄수를 돌봐야 할 폴이 존의 위로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데요, 폴은 그때의 존 위로 덕분에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었다고 믿는 거죠.
존이 누명을 쓴 것이 맞고, 폴이 그것을 정말로 확신한다면 재수사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좀 써주면 안 되었나요? 그대로 사형을 당해버리면 존이 너무 억울하잖아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폴이 당연히 했죠. 그러나 고의로 씌워진 누명이었어요. 고의라 함은 누군가 권력 있는 자가 중간에 힘을 써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어요? 교도관 신분인 폴 한 사람의 몸부림으로는 어림도 없었고, 존 누명을 벗기기는 너무 어려웠던 거죠. 집행일이 더욱 다가오자 괴로워하는 폴에게, 존은 말합니다. 자신은 어두운 것을 싫어하니 어두운 곳에만 묻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죠. 맘 아픈 장면이었는데요, 사형 전날 결국 폴은 교도관의 사명을 버리고 존에게 탈출을 권유합니다. 1935년 미국 남부에서 실제로 벌어진 억울한 사형집행 사건이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 사건과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이 함께<그린마일>의 모티브가 되었어요. 억울한 존이라도,탈출하여 폴을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국은 전기의자에 앉습니다. 작품 속에서 쇼생크 탈출과 같은 탈출이 일어나길 소망하였으나, 이 영화는 생각지 못한 다른 감동을 주며 엔딩을 맞이하죠. <그린마일>과 함께 그 감동을 누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그린마일> 톰 행크스 _ 이미지 출처 : 구글
많이 듣고 또 들어보셨을 유명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내가 헛되게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그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이 시점에 딱 맞는 말인 것 같은데요.
죽음의 의자 앞에서 살고 싶지 않을 사람도 있을까요.
그것이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서라면 그 삶의 의미는 더욱 통탄함과 혼란스러움으로 뒤죽박죽 되어 살고 싶다는 몸부림과 외침으로 표현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