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그르니에 , 아구찜
폭염이 오기 전 떠난 서해안 여행길에 쟝 그르니에의 섬이 떠오르는 몽환적 장면을 만났다.
그것은 두어 시간을 올라야 하는 긴 구릉을 비밀스런 꽃들이 난무하는 척박한 대지와
자연에 대한 경이로 겸손해진 숨길... 그 다음에야 얻은 감동이다.
오랜 시간의 흐름이 빚어 낸 기품과 정적, 완벽한 무심이 건네고 있는 더 많은 언어가 거기 있었다.
" 어떤 풍경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모든 욕망이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고 공(空)의 자리에 충만함이 들어 앉는다. "
그의 문장이 적절한 곳이었다.
섬에서의 잠자리는 다소 불편하다. 자연의 비밀스러움을 많이 가진 여행지는 더 그렇다
지난 몇 개월 동안은 상습적인 불면과 뇌를 깨울 더 진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간간이 밥을 챙기던
비효율적 상황이었고 일은 놓을 수도 계속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몸은 더 좋은 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
그래도 꾹꾹 눌러 놓은 스트레스가 비죽이 나올 때는 몇 개 가본 적 없는 국내 여행을 꿈꾸곤 했다.
"이 코로나 시국에 사치지 그렇고 말고..." 그러며 떠난 여행
모로코 쉐프샤우엔 마을을 흉내라도 내듯 다양한 푸른 물감들이 어설프게 흩뿌려진 마을 집집이
그 특이한 생선 아귀들이 줄줄이 걸려 말리고 있다.
아귀라는 고기는 남해 내 고향 근해에서나 잡히는 특산물인 줄 알았는데 서해 군도 어디에나 흔한
광경이란다. 어찌나 살집들도 좋은 지 내가 알던 비쩍 마른 어린 시절 아구의 기억은 가난한 집 아이의
자부심 같이 여겨진다.
지금도 나는 질척대는 생아귀살에 들큰한 양념범벅을 한 서울식 아귀찜엔 별 흥미가 없다.
빨다보면 마른 뼈다귀에 입안 살점이 낚시처럼 걸려 당겨지기도 하던 어린 기억 속 혹독하게 매웠던
담백한 아구찜은 언제나 엄마처럼 짠하고 그리운 소울푸드다.
그 매웠던 국물로 다음날 밥 한 끼쯤은 더 때우시던 엄마의 식단표를 이야기하며 언니와 나는
그 추억으로 조카들은 모르는 밤참을 나누기도 한다.
빛이 변해가는 서해의 일몰을 바라보다 문득 고향의 마른 아구찜이 떠오르고
이제는 낯설어져버린 그 거리들을 그 때의 여고생처럼 아프지 않고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