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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의 아침

사이공, 무이네 리조트

by Suyoung


추운 겨울을 뚫고 먼 길을 달려와 일어난 늦은 아침, 베란다로 난 커튼을 걷고 마주친 열대의 풍경은

행복한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파도가 느리게 밀리는 긴 해변과 푸른 야자수, 한가로운 점이 된 사람들....

아직 가시지 않은 아침 햇살이 만들어낸 거대한 오렌지빛 바다라니...!

눈 아래 풀장 곁에 줄줄이 놓인 쉼터 의자들이 어서 내려와 맨발을 드러내고 허리도 풀고 서비스 칵테일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방안 침대 속이 너무 편해 나는 일행과 떨어져 아침도 안 먹고 늦게까지 잠자곤 했다.

큰 결정을 많이 내려야 했던 어수선하고 힘든 연말을 견디고 온 나를 베란다에서 보이는 평화롭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여유만으로도 잘 케어하고 있었다.

저녁이면 남국의 풍성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파도소리 가득한 밤의 리조트에서 어울려 노는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을 구경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두 번째 베트남 여행은 한국인의 기억 깊은 곳에 주입되어 있는 사이공, 메콩강 같은 전쟁 역사 속의

남부 지역을 번쯤은 고 싶었던 게 목적이었고 무이네에서의 휴식은 곁들이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휴양지가 주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아 돌아갈 추운 겨울을 대비하

늦게까지 남국의 정취를 즐겼다. 주변에 볼거리도 있어 베트남 남부 고대 왕국의 참족들이 시바신을 모셨다는 힌두사원 포사이누 참파나 프랑스풍의 세련된 와이너리에 들르거나 붉고 흰 사막에서의 지프차 투어들도

그럴 듯 하다. 기대하던 사이공 근교에서의 메콩강 투어는 강물이 언제나 황톳빛이라는 여러 작품들의 문구를 확인하며 큰 감흥 없이 끝낸다.

영화 '연인'의 프랑스 소녀가 중절모를 쓰고 배 난간에 기대어 섰던 그대로 식민지 시절의 탁한 메콩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근대화 격동기처럼 동남아 여러 나라도 열강들의 접전장이 되어 특히 인도차이나 반도엔

아픈 역사가 많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나라까지 연루된 긴 전쟁까지 겪으면서 이곳의 전쟁 박물관은 중요한 관광거리인 듯하다. 그러나 밤의 호찌민 시내를 들어서며 모두들 깜짝 놀랐다.

짐작은 했지만 엄청난 번영기를 반영하듯 세련된 현대식 건물들이 서울이나 동경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무섭게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

아이를 낳지 않는 우리나라가 잠시 걱정이 되네.


떠나는 날 아침에도 자발적인 늦잠을 자고 아침 식사는 거른 채 부드러운 무이네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이제 베트남은 그만 찾아도 될 듯싶어 공항에서 잔돈으로 특산품인 캐슈넛을 잔뜩 샀다.

모두들 공항 풍토병 같은 감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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