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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보는 사람들

평창 안반데기 , 루소, 에드워드 호퍼

by Suyoung



카메라 성능이 별로였던 달빛아래 잠든 집시의 노곤한 얼굴을 제대로 담아 오진 못했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오래 바라봤던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 The sleeping gypsy )'다.

신비한 밤의 사막에서 잠든 너무도 까만 얼굴의 집시 여인과 애완견처럼 곁을 지나는 신기 사자

한 마리, 피곤한 하루를 말해주는 지팡이는 자면서도 놓지 않았다.

소중해 보이는 악기와 물병 하나를 머리 맡에 두고 잠든 그녀를 비추는 몽환적 분위기의 달빛...!

일 년 중 3분의 2가 야행성인 나의 발길을 붙든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다.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어찌나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지 보는 내가 다 숙면하는 감정이입까지 된다.

이렇듯 섬세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흔쾌히 시간을 할애하는 독특한 은 명화들 속에 많이 있다.

밤의 경이로운 사막 풍경을 상상하고 오롯이 창조하는 시선은 밤의 작가이고...

뉴욕 여행에서 보지 못해 아쉬웠던 에드워드 호크의 '밤새는 사람들(Night hwak)' 역시 대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을 보여 주는데 밤이라는 배경을 십분 활용했다.



이렇듯 밤은 살아있는 또 영민한 인간 활동 역으로 대자연의 개화를 보거나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거나...

한 번쯤은 봤으면 했던 평창의 고랭지 배추밭을 사진 동호회분들의 일원이 되어 야간촬영에 동참했다.

수확 앞둔 짙은 초록벌이 끝없이 펼쳐진 안반데기는 알배기 배추만큼이나 사이사이 우뚝 선 풍력 발전기들의 모습도 경이롭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흰 날개들은 조디 포스터가 나오던 영화'콘택트'에서 우주와의 교신을 위해 설치해 놓은 기구들을 연상시킨다.



이 곳의 일출은 경사진 배추밭과 어우러져 사진작가분들에게 손꼽히는 촬영 명소란다.

도착하자 모두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해서 자신만의 위치를 잡고 꼬박 밤이슬에 젖어가며

일출을 볼 때까지 밤을 지킨다. 간간이 커피와 간식을 얻어먹으며 겨울패딩까지 걸치고 나는 이 분들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형형색색의 변화를 보이던 무서운(?) 일출이 지나가고 운무와 해의 붉은 기운이 조금씩 빠지면서

밤에 제대로 보지 못한 드넓은 고랭지의 풍경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슬을 듬뿍 먹은 알배기 배추들이 값 비싼 몸매를 수천 이랑으로 보여주는데 부지런한 일꾼들이

출하 전 작업을 서둘러 시작한다.

평창 안반데기는 도시인들이 흔히 보지 못하는 독특한 전원풍경으로 지닌 마을같다.

보통의 농촌 풍경하고는 좀 다른.... 드넓은 배추밭의 골짜기를 휘둘러 구경하고 내려와 주민센터 같은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가짓수 많은 밥상 위에 김치만 없네. 온통 배추밭 한가운데서 말이다.

아줌마가 쑥스럽게 웃는다. 여름도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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