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서도, 유채
아파트 옆 상가에 새로 들어선 커피집과 붕어빵 가게는 주말이면 간혹 들러 간식거리를 장만하는데
두 곳의 안주인들이 로마살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오래된 기억을 주고받는 재미가 있다.
음악을 한 부부의 알바인 듯한 붕어빵은 그 내용의 완성도로 봄까지도 온 동네 주민들을 즐겁게 하고
로마에서 요리학교를 다녔다는 젊은 부부의 아란치니는 유럽을 다녀온 이들의 추억을 건드린다.
젊은 시절 언니의 소개로 로마에 선 보러 갔다가 금수저 맞선남엔 관심 없어 알바 나온 유학생 가이드와
콜로세움 옆 주점에서 놀거나 아름다운 테베강 주변 밤거리를 쏘다니다 그곳 소년들과 시비가 붙어
한밤중 로마시경까지 구경했었다는 이야기에 이 여인들은 로마에선 그럴 만한 영화라고 맞장구 한다.
봄도 지칠 듯한 5월이 가기 전 마지막 남은 유채를 보러 청산도 가는 길 옆 들른 여서도
이 섬은 로마 근교 브락치노라는 캠핑지의 소박함이 연상되던 곳이다.
돌담을 높이 쌓아 지은 작은 집들이 이끼 낀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을 조성하고 모두가 마당 가득 유채를
안고 있는 정겨운 캐릭터인 데다 안개가 내려오는 산등성이 길엔 겨울부터 낙화한 붉은 동백들이 아직도
수북하다. 게으르지 않다면 사진을 담을 것이 소소하게 있을 곳이다.
일행과 노닥거리며 산책할 수 있는 긴 방파제, 푸른 해변을 따라 유채가 불을 밝힌 모퉁이 밭들...
봄철 짧은 휴가에는 소문난 옆의 청산도를 보고 오히려 이 섬에서 하루를 쉬어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 줄 듯 성심껏 내어주던 남도의 섬밥상들도 좋았다.
매 끼니 깊은 손맛이라 소식인 나도 빠짐없이 밑반찬을 섭렵했는데 다양한 해조류에 몇 가지 종류의
생선구이와 조림, 삼치회를 처음 맛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꽃다운 꽃들이 거의 피었다 질 무렵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고 내 바깥놀이도 끝낸다.
10년, 20년이 흘러도 전국 곳곳에서 봄바람처럼 묻어오는 아이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은 숙제 같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