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수목원, 천북 청보리밭, 예산 백설농원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잘 살아내는 일은 의외로
힘들어서 오래도록 주변에 맑은 지인들이 더러 남아 있음이 감사한 요즘이다.
얼마 전 30년 전의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풋풋한 시절에 좋은 직장을 얻어 빛나는 열정을 함께 가졌던 사이라 긴 세월을 훌쩍 넘어 만났는데도 그때가 어제인 듯 아무 스스러움이 없었다.
그녀가 보러 온 아들은 내가 30년을 거주하는 동네였고 우리는 그 아들들의 나이 때 만났다 헤어져 이제 노인의 길에 서서 만났으니.. 그럼에도 그녀는 나의 어머니 임종 이야기 한 구절에 금세 눈물 가득한 눈이 된다. 우리가 가진 것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던 그 시절들이 오랜만에 돌아봐지던
날이다.
봄 축제을 따라 4월에 충청도의 신생 수목원에서 흰 눈에 덮인 듯한 길을 걸었다.
지고 있는 벚나무 아래를 지나 배꽃과 조팝나무 덤불이 은빛으로 눈부신 정원이었다.
덤불 사이사이 웨딩 촬영 중인 신부와 그 친구들의 윤기 나는 웃음이 하도 예뻐서 지나던 우리는 기분
좋은 참견꾼이 된다. 인생의 빛나는 봄날에 선 것을 잘 모를 그녀들, 구경꾼인 우리만 감회에 젖었다.
봄 들어 벌써 두 번째 쑥국을 끓인다. 집밥을 선호하는 편이라 제철 재료 찾아먹기를 하는 편인데
일주일 간격에 쑥이 거칠어져 조금 섭섭한 맛이 되었다.
나의 쑥국은 어릴 때 엄마가 하시던 그대로 청정지역에나 산다는 대합을 다져 넣고 고소한 콩가루를
풀어야 제대로 입맛에 좋다. 서울 동창들이 올 때는 들깨가루를 내어 주지만 나는 별로다.
그녀들은 추어탕에도 칼국수에도 온통 진한 맛의 들깨가루를 뿌려 먹는다.
참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부모 곁에서 익힌 입맛을 타향에서 익힌 긴 세월이 이겨내지 못한다.
나의 레시피에 길들여진 아들도 훗날 이 봄날의 쑥국을 찾을 것이다.
작은 우리나라 국토에서 충청도는 내가 가장 잘 모르는 곳이었는데 요즘 들어 자주 여행을 하게 된다.
크게 알려진 명소가 없다고 생각하던 이곳에서 숨겨진 봄구경을 많이 한다. 머리 푼 나무들이 잠긴
한적한 예당호의 반짝임, 주인이 공을 많이 들여 사진 뷰가 멋진 천북 청보리밭도 마음에 담았고 예산의
한 농원에서는 사진작가분들의 진지함을 카페에 앉아 감상하는 여유로움도 즐겼다.
이 백설농부라는 농원은 4계절의 마당이 다 아름답기로 SNS에서 유명하다. 옆에 사과 농장과 수선화가
아름다운 뒤뜰을 가졌는데 사과주스가 특히 유명하지만 커피 곁의 베이커리들도 수준 이상이어서
지인들과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