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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우울해지곤 해요

by 연남동 심리카페

하나와 나는 그해 겨울 너무도 힘들었다. 이 이야기는 스펀지처럼 감정들을 머금고 있었던 하나와 예쁜 동네 외로운 곳, 추운 거리 따뜻한 곳이였던 나의 심리카페에서 보냈던 시간과 나누었던 대화를 담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흔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 말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저라도 괜찮나요?"

"네, 괜찭아요. 너무 궁금해지는 걸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요."



하나는 나의 심리카페에 찾아왔을 때,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경직되어져 있었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너무도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요즘, 자주 우울해지곤 해요.”



하나가 처음 나의 심리카페에 와서 자신에 대해 제일 먼저 해준 말은 이것이였다. 하나의 우울한 기분은 남자친구와 왔을 때에도 그대로였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하나의 우울함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우울한 기분의 근원은 무엇인지 하나가 살펴보았으면 했다. 우울한 기분에서 나오기 위한 열쇠를 가질 수 있게.



“동생들 울잖니, 동생들이랑 똑같이 굴래? 너가 주면 금방 해결될 일 갖고 엄마 피곤하게 만들래?”



하나의 엄마는 동생들과 하나가 싸우게 되면, 이런 식으로 싸우는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다. 착한 딸이고 싶었던 하나였기에 엄마의 이 방법은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였다. 하나는 자신의 속상함과 억울함보다 엄마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었으니까. 하나는 하나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기분에 대해 헤아림 받고 보살핌 받았던 경험이 없었다. 하나가 스펀지처럼 감정들을 머금고 있게 된 것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울한 기분의 근원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살펴보면, 거기에는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인 엄마의 잘못이 있었고, 하나는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하나에게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에게 있어서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들과는 그렇게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신의 속상함이나 억울함에 대한 살핌 보다는 그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의 추구를 원했다. 그리고 그 모습과 방식이 남자친구가 생겨도 우울한 기분 그대로 있게 만들고 있는 근원이었다.



“어제 남자친구랑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나 우울증 아니겠지?’라고 말했었는데, 남자친구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우울증이 심하다고 하더라’라고 남 얘기하듯 말하더라고요.”



남자친구는 하나의 엄마처럼, 우울증은 아닐지 신경 쓰이고 걱정하고 있는 기분에 대해 읽고 살펴주는 모습은 없는 반응을 해주고 있었다. 안심시켜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보를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하나의 남자친구는 여자 친구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가운 사람, 냉정한 사람이요. 공감을 잘 안 해줘요.”



남자친구의 이 말을 듣고 하나가 불쌍해 보였다. 제가 파악해서 알고 있는 하나의 모습은 마음이 여린 모습인데, 그런 하나를 ‘차가운 사람, 냉정한 사람, 공감을 잘 안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하나에 대해 읽으려고 하지도 살펴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과 하나는 그런 취급을 받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하나는 남자친구와 왔을 때,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남자친구와 싸우지 않으려면 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하나에게 남자친구가 자신에 대해 ‘차가운사람, 냉정한 사람, 공감을 잘 안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니 무겁고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웃으며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저에게 정서적으로 기대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하나의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말이었다. 내가 본 모습도 그러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 모습은 하나의 말이 떨어지고 바로 나왔다. 남자친구는 몸을 하나 쪽으로 돌리고는 하나의 손을 잡고 힘을 주어 꾸욱 누르며 하나의 눈을 조금 무섭게 힘을 주며 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행동한 것이여서 하나는 남자친구의 행동을 그냥 장난인 듯 계속 웃으면서 받아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웃지 않으면 이 행동이 장난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겪고 행했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큰 문제, 별 문제 없는 것으로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오고 있었던 것이 그려졌었다.



“왜 손을 잡으신 건가요?”



나는 남자친구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물었다.



“웃어서요. 그냥 웃지 말라고 잡았어요.”


'네, 제가 보기에도 그러셨죠. 상담 진행의 흐름을 끊으면서까지도 자신이 기분 나쁜 것에 대해 바로 통제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자친구에 대해 “차가운 사람, 냉정한 사람이요. 공감을 잘 안 해줘요.”라고 한 말이 얼마나 남자친구 분이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런 남자친구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자친구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자기’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반응해주고 있었는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고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하나에게 '이 사람에게서 도망치세요. 벗어나세요. 이 사람은 아니에요'라는 마음과 표정을 담아서 물었다.



“남자친구가 방금 이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아, 저 기분 안 나빠요. 오해예요. 우리 이렇게 서로 장난을 잘 쳐요.”



하나는 여전히 웃으며 말을 했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보고 물었다. 남자친구가 사실을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고맙게도 남자친구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장난이셨던 건가요?”

“아니요, 장난 아니였는데요.”



하나는 남자친구의 이 말에 무안해하면서도 여전히 웃으면서 있었다. 하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네, 저였으면, 무안하고 무서웠었을 것 같아서 여쭤봐드렸었어요.”

“전 괜찮아요. 기분 나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자연스럽게 하나에게 통제하는 행동을 보였고, 하나는 남자친구의 그런 행동에 자연스럽게 웃으며 받아주었고, 잘못된 것임에 대해 알려주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분을 읽지 않고 좋게좋게 미화시켜서 문제 없음으로 만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언제나처럼 또 아무 일이 없어다는 듯 그냥 넘어가고 있었다.



하나는 언제나 나의 심리카페에 찾아와서는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남자친구 뿐만이 아니고 엄마와도, 친구와도, 회사 사람들 하고도 어떻게 하면 좋게 지낼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갖고 물어보았다. 나름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노력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좋은 방법을 알고 노력을 하며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고 싶다고 말을 해주었다.



꽉 막힌 현실과 상황을 살아야 했던 하나에게 있어서 이런 모습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달라진 현실을 바라기보다 달라질 수 없는 현실 안에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더 와닿는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였을 테니까. 하나는 매번 그나마 덜 힘들 수 있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황상황에서 자신의 기분을 읽지 않고 살피지 않는 것이다. 읽고 살피는 순간 희망을 품을 수가 없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기분을 읽고 살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력하는 자신이 차라리 안전하고 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그림검사의 그림들과 들려주는 이야기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치 추워서 몸을 떨고 있고 입술이 파랗게 변해있는데 말로는 "전 안 추운데요? 그렇게 춥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 곂에 있는 사람들이 추워서 몸을 떨고 있고 입술이 파랗게 변하고 있는 것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안타까운 것은 하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본인들이 피곤하고 귀찮아지고 수고스러워지고 싶지 않아서. 하나가 애쓰는 노력을 고스란히 이용해먹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가 가지고 있는 우울의 근원은 하나에 대해 읽고 살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환경으로 보였다. 하나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을 읽고 살펴주지 않는데 어찌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가 우울해지곤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모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하나가 우울해하면서 힘들어 하지 않게 되었으면 했다. 자연스럽게 스펀지처럼 감정들을 머금고 아무렇지 않고 괜찮다고 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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