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kahai (아카하이): 친절, 부드러움을 의미
L-Lokahi (로카히): 통합, 조화로움을 의미
O-Olu’olu (올루올루): 화합, 기쁨을 의미
H-Ha’aha’a (하아하아): 겸허, 겸손을 의미
A-Ahonui (아호누이): 참을성, 인내를 의미
서핑하면 하와이, 하와이하면 ‘알로하(ALOHA)’, 이상이 알로하라는 사랑스런 인사말에 깃듯 의미라고 한다. 종합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개인성을 얼마간 내려놓고 조화에 중점을 두고 함께 살아가자는 ‘나눔’의 의미로 읽힌다.
내가 ‘서핑’ 혹은 그를 실행하는 ‘서퍼’에 대해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다. 바다에서 혹은 다른 서퍼에 대하여, 도시에서라면 당연히 칠 법한 개인됨의 방어벽을 얼마간 부시고, 나의 것을 흔쾌히 내어주고 또 타인의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삶의 자세. 타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어떠한 불편함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기.
일평생 ‘나의 것’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두 손에 꼭 쥐고 살아왔던 나에게는, 무언인가를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시점, 내려놓을 수 있는 상대방, 내려놓을 수 있는 집단이 간절히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핑이라는 한 운동을 둘러싼 문화의 총체를 통해 그것이 가능함을 읽어냈던 듯싶다.
서핑에 대한 간절한 동경을 대체 언제부터 갖고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사실 서핑이라는 행위를 처음 안 계기, 혹은 서핑이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은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미 서핑이라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했던 때가 두어 시점 떠오를 뿐이다.
그 중 더 오래된 때는 23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중국어 어학연수를 위하여 유학 가 지내던 날들 중에 있다. 흔히 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캘리포니아, 호주, 발리 등을 떠올리는데 가깝게는 일본이나 대만에도 연중 좋은 파도가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즐긴다. 특히 대만 남부에는 아름다운 풍광과 서핑하기 좋은 해변들이 많다. 당시 중국어 학원에서 공부하던 교재의 한 챕터가 이러한 대만의 남부 관광지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었고, 그때 처음 바다에서 하는 서핑을 뜻하는 ‘衝浪(대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번체자, 중국 대륙에서 사용하는 간략화 된 중국어 간체자로는 冲浪)’이라는 단어를 익혔다.
‘衝浪’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서 가슴 벅참과 설렘, 묘한 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 이게 서핑에 해당하는 중국어구나. 서핑은 정말 멋있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라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시점, 바로 그 글자를 알려준 대만에서의 서핑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머지않아 자세히 나눌 때가 있으리라.
지금까지 나는 서핑의 경쟁적인, 그리고 자기극복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에 몰두하면서 그와 관련된 내 삶의 기억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서핑에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를 소개하고 서핑과 관련된 행복한 기억들을 차차 꺼내 놓아보고 싶다.
“옛날 하와이에서는 서핑이 단순히 개인적인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 의식, 나아가 부족의 행사와도 같은 것이었대. 그래서 서핑이 끝나면 반드시 부족원들이 해변에 한데 모여 돼지나 소를 잡아다가 통구이를 했고 그걸 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는 거야. 서핑 자체보다 그렇게 나눠먹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였대. 그래서 우리도 지금 이렇게 다 같이 고기 구워 먹는 거야.”
어느 여름 날, 서핑이 끝난 뒤 함께 고기를 구워 먹던 친구가 이야기 해 준 내용이다.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서퍼라면 이러한 이야기에 숨은 뜻, 서핑 후 함께 구워먹는 고기는 맛있다는 것 이상으로, 서핑에 나눔의 정신이 깔려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서핑의 규칙 중 ‘로테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이 단어를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어느 한 대상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인데, 이를 바로 서핑에 규칙으로 적용해보면 파도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타야 된다는 원칙이 나오게 된다. 이전 글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어느 한 파도는 피크에서 서핑을 시작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나머지 서퍼들은 그에게 해당 파도를 양보하여야 한다. 그러나 ‘로테이션’ 규칙에 따르자면 때로는 이 우선권을 가진 사람이 진짜로 우선권을 가진 것이 아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파도는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번호표를 받고 대기해 입장하듯 순번에 따라 내 것이 정해져서 오는 것도 아니다. 아주 흔한 표현이지만 파도는 자연이 우리에게 타고 놀라고 준 선물이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어떤 연유에서건 자연이 대가없이 준 선물을 홀로 독점해 다른 사람들은 즐기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할까?
그래서 서핑에는 ‘로테이션’이란 룰이 있다. 라인업에 나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 사이에, 파도 탈 기회를 나누어서, 파도를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타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령 라인업에 A, B, C 세 명의 서퍼가 있다고 하자. A 서퍼는 다른 두 서퍼보다 서핑 실력이 더 좋아서 피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고 계속해서 피크의 위치에 떠있으면서 파도를 기다리다가 밀려오는 파도를 다 잡아타 B와 C 서퍼가 탈 파도가 없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능력에 따른 경쟁이 가장 중요한 여타 스포츠에서 A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로테이션’ 룰이 있는 서핑에서는 그 날 라인업에 함께 있는 B와 C에게도 파도 탈 기회가 고루 돌아가야만 한다. A가 때로는, 피크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B나 C가 진입할 수 있도록 솔선하여 자리를 비켜줄 수도 있다. 혹은 A가 피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와중에 B가 C가 피크에서 다소 벗어난 숄더 지점에서 파도타기를 시도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파도임을 주장하지 말고 이따금씩 양보해 그들이 파도를 탈 수 있게끔 배려해주어야만 한다.
만약 A가 위와 같은 배려를 하지 않을 경우, A는 ‘로테이션’이라는 규칙을 지키지 않은, 거의 상대의 파도를 뺏어 타는 반칙인 ‘드랍’을 한 것에 버금가는 반칙을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서핑이 개인적인 스포츠임과 동시에 ‘나눔’의 문화가 강조되는 집단성을 띈 스포츠로서의 본질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로테이션’ 규칙이 단지 바다 위에서 뿐 아니라 서퍼들이 서핑 그리고 삶을 즐기는 문화 전반에 고루 퍼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