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 수록 솔직한 피드백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솔직한 피드백이 그리워진다.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오랫동안 생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군을 만들지 않는 것이란 걸 모두가 깨달아버리면, 그 때 부터는 아무도 다른 누군가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연차는 쌓여가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들을 수 있는 피드백이라고는 고작 '제가 감히 누굴 평가하겠어요'라던가, 'OO님는 어디가시든지 잘 하실거에요' 'OO님은 정말 능력자세요' 거의 이 세 가지가 전부다. 이래서야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부분을 좀 더 보완해야 남들이 더 좋아할만한 팀원이 될런지 정확하게 알기란 힘들다.
그래서인지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직장 선배들은 모두 나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준 사람들이었다. A라는 과장님은 나에게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니 응용력이라던가 창의력이라면 모를까 어디가서 머리 나쁘단 소리 들어본 적 한 번 없는 나에게 이해가 딸린다니. 그분의 직설적인 언어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분야에 대해 그토록 솔직한 피드백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나는 잘난 척 하며 일 배우려는 태도는 밥 말아 먹은 건방진 신입사원의 애티튜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B라는 과장님은 피드백을 넘어서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선생님께 숙제 검사받듯이 그 분에게 나의 작업물을 가져가서 피드백을 받는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분의 피드백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잘 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못 한 것은 왜 이렇게 했냐는 집요한 추궁을 들어야 했다. 덕분에 그 때 가장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다.
C라는 책임님은 나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들려주었다. 뭐, 쉽게 말하면 뒷담화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뒷담화라는 것이 방송에 비유하면 공중파에는 절대 못 나갈, 유튜브에서나 할 만한 솔직한 뒷담화였다. 비속어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이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인물평이었다. 그 분의 말을 100프로 믿지는 않았지만, 어떤 행동이 사람들에 눈에 이러이러하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것도 나름대로 나에게는 간접적인 피드백처럼 느껴졌다.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회사에서는 연말 평가라는 것이 다가온다. 이 평가 시즌이 되면 나는 종종 그 분들을 생각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평가라는 것을 숱하게 겪었지만 어느 평가에서도 나의 진심어린 성장을 바라는 피드백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모두의 관심은 얼마나 남들 평가를 정성스레 써 줄 것인가보다 회사에서 정한 등급에 따라 연초에 받게 될 성과급이 얼마일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 받으려고 하는 평가는 일단 그 돈이 입금되고 나면 싹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를 되돌아볼 기회도 없이 내년이면 연차가 또 일 년 오를 것이다. 누구 말마따라 연차 X구녕으로 먹은 시니어가 될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처럼 누군가의 커리어 롤모델이 될 지 그 분기점이 점점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연차 쌓이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