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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환대'라는 이름의 디테일 (인간적 증거)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맛은 주방이, 가치는 홀이 만듭니다." 현서의 칼날이 20년 지기 박 여사를 향한다. 유니폼, 응대 멘트, 눈 맞춤. 사소한 '인간적 증거'의 변화가 가게의 '온도'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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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주방이, 가치는 홀이 만듭니다." 시스템은 완벽해졌다. 가마솥, 스토리보드, 전문적인 메뉴, 그리고 '줄'까지. 하지만 고객 경험의 마지막 퍼즐은 '사람'이다. 현서의 칼날이 20년 지기 박 여사, 즉 '송정옥'의 가장 오래된 습관을 향한다.


"특 하나, 보통 하나 나왔습니다!"


이태웅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주방에서 홀을 내다보는 그의 눈에, '설계된' 만석과 입구에서 '기대'하는 대기 손님들이 보였다. 가게는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박 여사가 쟁반에 뚝배기 두 개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며칠 전 그 꽃무늬 스웨터에 앞치마 차림이었다. (부정적 인간 증거)


"4번 손님, 국밥 나왔..."


'쿵.'


박 여사는 20년의 습관대로, 뚝배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국물이 그릇 밖으로 살짝 튀었다.


"아, 뜨거."


메뉴판(심리적 증거)과 스토리보드(정보적 증거)를 보며 '기대'에 차 있던 손님의 미간이 찰나의 순간 찌푸려졌다.


"김치 여기 있고요. 물은 저기."


박 여사는 손님이 부르기 전에 다음 테이블을 치우러 휑하니 가버렸다.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부정적 인간 증거)


이태웅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깨진 유리창'을 치우고, '컨셉 수트'를 입히고, '사회적 증거'까지 설계했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순간이 망가지고 있었다.


"사장님."


어느새 그의 곁에 다가온 차현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고객이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습니다."


"인지... 부조화요?"


"네. 고객은 입구의 가마솥과 60년 스토리보드를 보고 '장인의 정성'을 기대했습니다.(긍정적 증거) 하지만 방금 박 여사님은 '시장의 무심함'을 전달했습니다.(부정적 증거)"


현서는 태블릿을 켰다.


"고객은 저 '쿵' 소리에서 '내가 낸 돈이 아깝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맛'은 주방이 만들지만, '가치'는 홀이 만듭니다. 그리고 박 여사님은 지금... 사장님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태웅은 입술을 깨물었다. 박 여사는 그에게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20년간 가게를 지켜온...


"차 컨설턴트님. 박 여사님은... 원래 스타일이..."


"그 '스타일'이 지금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현서의 목소리는 타협이 없었다.


"'인간적 증거'는 고객 경험의 마지막 스위치입니다. 고객이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송정옥'은 그냥 '줄 서서 먹는 불친절한 국밥집'이 될 뿐입니다."


그녀는 들고 온 쇼핑백 두 개를 태웅 앞에 내려놓았다.


"1단계입니다. '유니폼'."


쇼핑백 안에는 '송정옥'의 붓글씨 로고가 깔끔하게 자수된 짙은 갈색의 앞치마와, 단정한 흰색 셔츠가 들어있었다.


"직원의 '복장'은 '나는 당신을 맞이할 준비가 된 전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인간적 증거'입니다. 저 꽃무늬 스웨터는 '집에서 입던 옷'이라는 신호만 줄 뿐입니다."


"그리고 2단계. '프로토콜'."


그녀가 작은 코팅지(응대 매뉴얼)를 건넸다.



[송정옥 응대 프로토콜]


[착석] (눈맞춤) "어서 오세요. 송정옥입니다."

[주문]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60년 전통의..." (메뉴판 스토리 간단히 언급)

[서빙] (쿵 ❌) "뜨겁습니다. 12시간 고아 낸 송정 곰탕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게... 뭡니까. 무슨 호텔도 아니고..." 태웅이 난감해했다.


"고객이 '스토리'를 읽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스토리'를 '듣게' 만드는 겁니다. '12시간 고아 낸'이라는 이 '정보'를 '인간'의 목소리로 전달할 때, 고객은 '맛'을 보기 전에 이미 '정성'을 경험합니다."


그때, 박 여사가 걸레를 들고 다가왔다.


"두 분, 또 뭔 회의를 그렇게..."


"박 여사님."


태웅이 결심한 듯 그녀를 불렀다. 그는 현서가 내민 유니폼과 매뉴얼을 집어 들었다.


"이거... 입어주셔야겠습니다."


박 여사의 얼굴이 굳었다.


"사장님... 나 이 나이에 이런 거 못 혀. 20년을 이렇게 일했는디..."


"박 여사님."


태웅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제가... 제가 20년 동안 잘못했습니다. 여사님 혼자 홀 보게 하고, 저는 주방에만 처박혀 있었죠."


"..."


"근데... 저 여자 말이 맞아요."


그가 현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그냥 국밥 파는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 할아버지의 '자부심'을 파는 거였어요."


그는 유니폼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그냥 '옷'이 아닙니다. '송정옥'의 '자부심'입니다. 박 여사님이... 우리 가게의 '얼굴'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박 여사는 태웅의 젖은 눈과, 자신이 20년간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던 그 뚝배기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는 긴 한숨 끝에,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는 현서가 내민 '유니폼'을 받아 들었다.


'인간적 증거'라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바꾸기 힘든 '깨진 유리창'이 수리되는 순간이었다.







13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2


'맛'은 주방이 만들지만, '가치'는 홀이 만든다.


직원의 응대(인간적 증거)는 '무형'의 서비스를 '유형'의 가치로 바꾸는 유일한 스위치다.


고객은 '불친절'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기대했던 가치(긍정 증거)'와 '경험한 태도(부정 증거)'가 충돌하는 '인지 부조화'에 실망하는 것이다.


가마솥(물리)이 '정성'을 약속했다면,


직원(인간)은 그 '정성'을 전달해야 한다.


유니폼과 스크립트는 '구속'이 아니라,


고객의 '기대'를 '가치'로 완성시키는 최소한의 '프로토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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