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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May 22. 2022

지금은 우리 둘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

 비출산 결심 스토리 (2) by 에디터 E.ge

‘영영이’(태명)를 유산하고 2년 뒤, 우리는 미국으로 떠났다. 아내가 결혼을 서두른 이유도 35세 이전에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아내 나이가 어느덧 목표했던 나이였다. 고민이 많던 아내에게 내 아버지가 넌지시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미국에서 애 하나 낳아서 시민권자로 만들어 와.”


당시 아버지의 말이 아내에게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복합적 감정이 들었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낳고 싶지 않아서 낳지 않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거든. 그런데 미국에서 낳지 못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어. 미국 가기 전에 알아봤는데, 출산하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더라고. 그래서 난 미국에서 돌아와서 낳아야지 생각했지.”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아이를 갖지 않아도 괜찮다’는 방향으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우리 삶에서 아이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내 마음속에 조금 자랐다. 그런 시간을 1년 정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중요하게 여겼다. 다시 아이를 낳을까 말까를 두고 아내의 고민은 커졌다.


나는 옆에서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고 부채질해댔다. 20대 후반부터 확신했던 비출산을 아내에게 계속 말하면서 말이다. 첫 임신 때를 생각해 보면, 아내가 아이를 갖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내가 옆에서 아이는 없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아내 생각을 바꾸기에는, 결혼하고 1년은 부족했는지 모른다. 난 설득하려 했지만, 아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미국에서 지내던 2016년, 벌써 36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줄었지?


아내: 이전보다는 줄었지. 내가 미국에서 여러 생각을 했는데, 아이 문제도 그중 하나였어. 2017년에 내가 37세였으니 당연히 생각이 많아졌겠지. 그 이유는 첫 아이를 낳기 위한 나이를 40세로, 스스로 정했기 때문이야. 그럼, 내가 아이를 가질 시간이 2-3년밖에 남지 않았잖아. 당연히 고민하지 않겠어.

한국에 돌아와서, 신문사 뉴미디어를 제작하는 일을 했잖아. 방송국에서 일하던 내게, 엄청난 1인 제작 능력을 요구했어. 그때 너무 바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드는 거야. 아이가 생기면, 내가 일에 100% 몰두할 수 있을까? 내게 중요한 시기인데, 이 상황에서 아기를 가지면 중단해야 하잖아. 이 문제로 오빠랑 싸우는 일이 잦았으니,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안 들지.


나: 맞아, 우리가 아이 문제로 싸움도 잦았던 시기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를 참 잘 견뎠어. 고생이 많았는데 말이지.


아내: 오빠도 많이 도와줬지.(웃음)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오빠가 아팠잖아


나: 아! 내 우울증이 있었지. 빠지면 안 되는 이야기이기는 해.


아내: 나는 오빠 회복이 먼저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37-38세까지 일과 아이 문제로 계속 고민하는 시기를 보냈지. 그러다 39세가 되는 해에 퇴사를 했어. 우리가 아이를 가지기 여러운 상황이 반복됐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많은 일이 있었지. 그 시기에 오빠가 뇌경색으로 말도 못 하고 고생했잖아. 그러면서 비출산으로 마음이 점점 기울어 갔지.


나는 아내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계속 병으로 고생만 하게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런 경험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아내는 비출산을 결정하도록 내몰렸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이 전쟁을 치르듯 살아간다. 그 와중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성장하는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내가 물었다.


아내: 오빠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어?


나: 내가 너에게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얘기한 적은 없었지? 나는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여성이 아이를 낳으니 당연한 일이지. 게다가 네가 일하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었잖아. 나도 네가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도 괜찮고,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던 것 같아.


아내: 나도 오빠가 아이 얘기를 하지 않아서 고마웠어. 그래도 아이를 원하던 시기가 있었을 것 같아.


나: 물론, 가끔 그런 생각도 해. ‘그때 우리가 왜 아기를 안 가졌지?’ 이런 질문을 나중에 노부부가 됐을 때 우리가 하지 않을까. 사람이 살면서 지금 그 순간에 중요한 게 있고, 미래에 중요한 게 있잖아. 그래서 너한테 최대한 선택권을 주고 싶었어. 아이는 여성이 낳으니, 여성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내가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아마 넌 내 의견에 따르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미래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포기하지 않았나 생각해.


아내: 나도 그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 노후에 찾아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아이를 내 노후를 위해 낳을 수는 없잖아. 무슨 연금에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우리 둘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

내 병으로 아내가 고생했던 2021년 나의 모습.

우리 둘이 사는 모습이 나도 무척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아이가 필요 없다고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아이를 ‘애물단지’ 취급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시기다. 자기 삶을 사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생각이다.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는데, 아이가 방해하면 시쳇말로 ‘존나 짜증 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나를 애물단지처럼 여겼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말을 하자, 아내가 물었다.


아내: 오빠가 자기를 애물단지로 여겼다고?


나: 어머니가 사업을 오래 하셨잖아. 당시 어머니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 실제로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 남자들이 하는 인테리어 일을 직접 하고, 사업을 키우기 위한 일도 전부 직접 했어. 그리고 밤에 들어오면, 다음 날 우리가 싸갈 도시락 반찬을 하셨지. 집안일도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그래서 내가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생각해.

가끔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했지. “다시 태어나면, 나는 아이도 안 낳고 결혼도 안 할 거야. 그리고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나는 이 이야기를 진짜 어머니의 바람으로 받아들였어. 어머니는 지금 이루지 못할 꿈을 이야기하셨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난 절대 아이를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야기가 빗나갔네. 하여튼 내가 사고 치면, 어머니가 굉장히 힘들어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스스로 애물단지로 생각하는 날이 많았어. 가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이 키우면서 힘들다고 얘기하면 이해가 가. 애를 애물단지로 여기는 감정에 동의하는 거지. 경험적으로 되게 슬픈 일이지만, 나도 부모를 힘들게 한 아이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슬픈 일이네. 스스로 그런 아이로 여겼다는 사실이.


아내: 어린아이가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아서 사고도 많이 치고 그랬다고 생각하니 불쌍하고, 안쓰럽네.


나: 어쩌면 너무 어린 시절을 아이처럼 보내지 않아서, 보상심리가 작동했나 봐. 동생도 돌봐야 했으니, 그런 마음이 더 크게 들었던 것 같아. 아마, 그런 경험을 하면서 아이를 혐오하는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도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는지 모르지. 그런데도 내가 20년 후에 아이가 없는 상황을 후회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해. 나도 ‘시대의 아들’이다 보니,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을 하나 봐.


내 고민을 아내에게 처음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두 마음이 존재한다. 이게 부족한 남편이자 아들의 솔직한 고민이었다. 물론 아이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크기에, 나는 그동안 오히려 아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나’를 늘 고민하며 지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나: 내 이야기가 강요처럼 들리지 않을까 늘 고민이었어. 아이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너에게 주입하지 않았나 생각도 했지. 아이 낳지 않는 길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솔직히 아이를 낳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그런데 네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니, 계속 얘기하는 방법 말고는 없더라고.


아내: 강요라고 하기보단, 솔직히 나에게는 굉장한 친절과 배려였지. 우리 또래 남성이 주로 아기를 낳자고 하지, 낳지 말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너의 선택지에 넣어라, 말해 주어 무척 좋았어.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한 거 같은데?


: 네가 왜?


아내: “오빠 나중에 진짜 괜찮겠어?”, “나는 괜찮은데 너는 후회하지 않겠냐?”라고 내가 몇 번 물어봤잖아. 근데 오빠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얘기해서 너무 놀랐어.


나: 나도 아이 갖는 일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지. 가령, 조카들을 보면 너무 귀엽잖아. 특히 조카 1호가 작년에 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영영이도 8년 전에 유산하지 않았다면 2021년에 입학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내 안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있구나’를 보고 나도 놀랐어.  

내가 애들이랑 놀 때면 에너지를 100% 쓰고 오잖아. 아이들과 헤어질 때, 나는 집에서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다’라고 혼잣말로 내뱉거든. 그런데 조카의 부모는 지금부터 다시 시달려야 하잖아. 그런 걸 생각하면 아이를 안 낳기를 잘했다고 느끼지. 항상 그런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를 경험해.


나는 처음으로 나를 인정했다. 그동안 조카 1호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컸는데, 어쩌면 유산한 아이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도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나를 돌아본 기회를 준 아내 질문에 고마웠다. 나도 모르고 있던 마음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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