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하고 뛰쳐나가도 괜찮은 동네 어디 없나요?

집에 대한 오래된 고민을 되짚어 보다 by 믹서

by 유유히유영

'어디서 살 것인가'


결혼 9년 차에 이 고민을 이렇게 깊이 하게 될 줄 몰랐다. 유현준 교수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도 뒤적여 봤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건축과 공간,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분석이 담긴 이 책에는 당연히 내 고민의 해결책이 없을 수밖에. 거시적으로는 관련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집 이슈는 오히려 고민의 범위가 훨씬 넓었다. 내가 살 곳을 정하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척 사회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서울 아파트에 사는 거, 그게 뭐?


결혼 전 나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있는 30평 대 아파트에 살았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 출신이고, 일찍 상경해 홀로 자립하여 아파트를 마련했다. 80~90년 대에는 월급쟁이도 열세 평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었나 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지만 아빠는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우며 부업을 해 저축을 했다.


외가 친척이 보험 일을 해, 엄마는 그분의 실적을 위해 보험을 몇 개씩 들어주었다. 때때로 보험 만기가 되면 쏠쏠한 수입을 얻기도 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재테크 없이 살아왔다. 그야말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샀고, 재건축을 거쳐 지금의 30평 대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오밀조밀 귀여웠던 5층짜리 아파트는 2000년에 재건축이 완공되어 23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됐다. 한강도 보이고, 전철역도 가까운 우리 아파트는 많이 비싸졌다. 부모님이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가능했던 아파트 구입이 이제 거액의 빚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결혼 전에는 이런 인식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내가 결혼했던 2012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가지고 산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었다. 아파트는 주거의 한 형태일 뿐이니,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란 무엇인가.


부모님 덕에 평생 아파트에서 편안히 지내왔기 때문일까. 나에게 집이란, 내 중심으로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결혼할 때도 신혼집에 대한 로망이나 기대가 크게 없었다. 당시엔 서울 한복판에 직장이 있었으니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안에 출퇴근할 수 있는 곳이면 오케이, 아파트에는 오래 살아봤으니까 주택에 살게 되어도 크게 불편함 없다면 오케이, 두 사람이 사는 집이니까 그리 넓지 않아도 오케이. 참 관대한 신부였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집에 대한 내 기준이 딱 그 정도였으니 그 이상의 조건은 달 수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준이 생기다


30여 년간 아파트에 살다가 결혼 후 다세대 주택에 살게 됐다. 전철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버스가 자주 다녔다. 회사까지는 50분 정도 걸렸다. 퇴근 후 전철역 부근에서 남편 Y와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즐거운 신혼 기간을 보냈다.


집은 열 세 평 정도였지만 둘이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주로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집은 씻고 잠자고 가끔 밥을 먹는 곳으로 여겼으니 그 정도 평수에도 불만이 없었다. 경비실 없는 것 빼고는 아파트와 다른 점도 잘 못 느꼈다. 그만큼 생활하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했다. 결혼 후 딱 한 달 만이었는데, 제법 크게 싸우고 집을 나와 버렸다. 밤 9시 정도였던 것 같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좀 당황했다. 동네 특성상 새벽까지 거리에 사람이 매우 많은 동네인데, 집 나온 여자가 처량 맞은 표정으로 돌아다니기에는 다소 민망한 분위기 탓이었다. 큰 도로로 나와 산책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공사 때문에 인도가 매우 좁아져서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격한 감정으로 집에는 바로 들어갈 수 없고, 울먹거리는 얼굴로 카페에 갈 수도 없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그 순간, 친정 아파트가 생각이 났다. 아파트 단지에는 여기저기 벤치도 많아 앉아서 생각도 할 수 있었는데... 조금만 나가면 바로 한강이어서 조용히 강변을 거닐 수도 있었는데... 왜 이 시끄러운 데에 와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에 대해 없던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 게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집 자체가 아니라, '동네'에 관해 원하는 무언가가 생긴 거다.


“밤에 부부 싸움하고 뛰쳐나가도 괜찮은 동네,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동네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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