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첫 집
우리 부부가 처음 살았던 집은 다세대 주택이었다. 결혼하기로 하고 전세로 집을 알아봤는데 송파구 삼전동 쪽에 괜찮은 집이 나왔다.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CCTV가 건물 계단과 복도에 설치되어 있어 아내도 좋아했다. 집주인은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 줄 것을 약속했다. 여러모로 만족할 만한 집이었다.
1억 3,000만 원. 첫 전세를 시작했다.
공사 기간 덕에 입주 날짜가 우리 결혼 날짜와 딱 맞아떨어졌다. 아내는 결혼 전날까지 끝내야 할 작업이 있어 집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바빴기에, 프리랜서 작가인 내가 이런저런 기본적인 세팅을 했다. 결혼 한 주 전에 대청소를 시원하게 했다. 신혼살림도 속속 들어오기 시작해, 무척 들떠 있었다. 이제 둘만의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정말 즐거웠다.
내가 도시락을 싸줬던 일부터, 첫 부부 싸움으로 아내가 집을 나간 일까지 모두 그곳에서 일어났다. 첫 집에 살며 신혼을 만끽했다. 당시 나는 딱딱한 성격 탓에 신혼을 즐길 수 없으리라 예상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아내와 있으면 달달하게 변신했다. 사랑으로 인생의 많은 고비를 넘길 수 있으리라는 강한 확신마저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리석은 그 시절의 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우리가 얼마나 싸웠는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집 현관문을 시트지로 붙인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 싸움의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심각한 분위기는 우리를 폭풍 한가운데로 거세게 끌고 갔다. 정말 이혼할 기세로 싸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고, 결국 시트지는 싸움이 끝난 후 겨우 붙였다. 동생이 바로 그날 찾아왔는데,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우리 부부가 알콩달콩 사는 게 좋아 보였다며, 본인도 결혼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아내와 내가 매번 싸우기만 하는 부부는 아니다.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첫 집에서 미친 듯이 싸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해 두겠다. 실제로 다정한 사이였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지냈으니 아내가 임신하지 않았겠는가. 그 아이 덕분에 우리는 11주간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안타깝게도 유산했지만, 지금도 있는 일기장·기록 속에서 그 아이에 대한 흔적이 가끔 발견된다. 아이가 태어났으면 우리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아이가 찾아왔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생기다니. 아내에게 '고맙다'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 기뻤다. 단순히 기뻤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그 후로도 나는 그 정도의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이를 유산했을 때, 상실감이 너무 컸다. 아마, 2014년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해로 남을 테다.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낸 장소도 삼전동 집이었다.
이런 추억도 있다. 우리는 스티커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도 우리 집이 아니니, 여기저기 막 붙일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우리 가전과 가구에 붙이기로 정했다. 벽에 붙이지 않아도 되니, 그 집에 피해를 입히지도 않고, 우리도 만족할 결정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마조 & 새디’ 스티커를 여기저기 가구와 가전에 붙였다. 여러 재미있는 멘트도 있었고, 캐릭터가 너무 귀여웠다. 마치 우리 둘을 향해 말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와도 이미지가 잘 겹쳤다. 일하는 아내와 집안일 하는 남편.
나는 살도 엄청나게 쪘다. 결혼 후 1년도 안 되어서 몸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혼 4년 차 정도에는 135kg을 돌파했다. 그 뒤로 내 몸무게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도 가늠이 안 된다. 그날 이후로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고, 몸무게를 회피 대상으로 여겼다. (당뇨와 뇌경색을 거쳐 지금은 89~91kg 사이를 오가고 있다.)
당시 내 체중을 늘게 한 일등 공신이 있었다. 바로 닭강정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같이 닭강정을 먹어 치웠다. 나는 몸무게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 닭강정을 끊기로 결심한 아내는 “살이 너무 쪘다”라고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내 주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다.
“몸무게는 숫자에 불과해. 우리, 체중계의 노예가 되지 말자.”
135kg 아저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삼전동 생활이 그만큼 즐겁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영원히 살아도 될 느낌이라며 웃었던 우리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혼 생활 2년간의 추억을 안고 삼전동 집을 떠나기로 했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로 이사했다. 당시 핫한 지역이었던 별내! 그곳에서도 즐거운 신혼이 이어지리라 기대했다. 9개월 만에 미국으로 떠날지도 모르고 말이다.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이사했던 그때, 별내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