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추억이 담긴 첫 집을 떠나다
송파구 삼전동에서 산 지 2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재계약 시점은 다가오고, 우린 당연히 재계약을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집주인도 같은 가격에 재계약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으니, 고민했다고 하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늘 꿈꾸고 상상했던 전원생활에 꽂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집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지금은 꿈도 못 꿀 가격이다. 송파구 상가주택 방 두 칸짜리 전세가 1억 3,000만 원 정도 나갈 때였다. 지금은 이 가격에 옥탑방도 구하기 힘들다. 지금 같은 부동산 지옥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우리는, 지금 집보다 좀 더 넓고, 주변에 산책로나 공원이 가까이 있는 조용한 경기도 외곽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땐 교통 편리한 서울보다 여러모로 여유 있어 보이는 경기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리고, 서둘러 자동차를 샀다. 집도 보러 다녀야 하고, 경기도로 이주했을 경우 차가 필요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당시 아내는 맹장 수술로 입원 중이었다. 병원에서 나는 우리 첫차가 될 ‘프리우스’에 대해 아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를 만족하게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괴물 같은 연비! 2014년 당시 프리우스만 한 연비의 차는 없었다.
한 달 정도 기다려 프리우스를 받았다. 우리는 그 차로 세상 어디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현실은 내가 운전 연수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자동차로 여기저기 가지 못했다. 새 차가 집에 막 도착했을 당시 해외출장 중이었던 아내는 “오빠가 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올 줄 알았다”라고 말했지만, 공항까지 운전하기엔 난 너무 초보라 그럴 수 없었다. 초보운전을 벗어나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운전해야 했다.
할부였지만, 차도 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경기권에서의 삶을 준비하기로 했다. 차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제동을 걸었다. 한적한 시골 동네를 알아보던 우리에게 일단 멈춰 보라고 했다.
나의 불만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쌓였다. 어머니와 여러 번 의견 충돌을 거쳤다. 어머니는 서울을 벗어나겠다는 우리의 결정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너희는 서울에서만 자라서 잘 몰라. 서울 떠나면 불편이 상당할 텐데 괜찮겠니?” 아내는 그 말에 살짝 흔들렸다. 나는 어머니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철이 없었다. 결국 우리 부부, 어머니의 의견까지 취합해서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신도시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 시절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남양주시 별내동이 바로 그곳이었다.
부동산을 통해 몇몇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는 처음 방문한 집을 마음에 들어 했다. 집 주변에 불암산으로 가는 길이 있고, 무엇보다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 좋았다. 완전한 전원 느낌은 아니었지만, 삼전동보다는 훨씬 덜 복잡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아내의 로망이었던 복층 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복층 빌라를 전세 1억 5,000만 원에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이사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부동산에 가서 도장 찍고, 전세 관련 대출도 받아야 했다. 처음 하는 이사라 신경 쓸 게 많았다. 이삿짐센터 분들도 고생 많이 했다.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거치며 공부한 전공 서적뿐 아니라, 아끼지 않고 사들인 관심 분야의 책들로 삼전동 집 한쪽 벽면을 채웠었다. “무슨 책이 이리 많아요?” 하는 이사하시는 아저씨들 불평을 이겨내고, 이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삿날에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집이 갑자기 넓어져 공간이 많이 비었으니, 채우러 다녀야 했다. 우선 거실부터 휑하게 비었다. TV장도, 소파도 다 사야 했다. 짐을 옮겼다고 이사가 끝난 게 아니었다. 이사와 동시에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됐다. 자동차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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