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의 질문들 04
열일곱 무렵의 어느 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욕조 물 위에 떠 있는 한 장의 사진,
그것은 마치 부르스 매캔들리스가 우주에서 끈 없이 유영하는 것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말간 인화 종이에 늘 봐왔던 자유공원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친구였던 L이 암실에서 인화를 하고 욕조에서 수세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내 영혼이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의 끝까지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것, 그것은 한 편으로는 희망이지만 절대 이룰 수 없는 절망의 조각이기도 했다.
"사진, 어떻게 배울 수 있어?"
"그냥 하면 돼.“
그러나 나는 "그냥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그 당시 니콘 FM2 카메라 한 대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이걸 왜 찍었지?"
"응,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달라. 사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지. 안 그래? 주변을 봐. 우리가 매일 다니던 길에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야. 오다가 골목 담벼락에 붙어 핀 붓꽃 봤어? 우리는 우리가 관심 있는 것만 보게 돼. 하지만 카메라는 우리가 못 본 것들도 보여주지."
사진은 우리가 응시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못 본 것들도 보여준다"는 친구의 말이 오랫동안 귓속을 맴돌았다. 친구 L은 그렇게 사진에 푹 빠져 있었고, 나는 그 친구를 줄곧 쫓아다녔다. 사진이 붙잡은 시간은 마법과도 같아 보였다. 한 세계를 네모나게 잘라서 보관한다는 것. 어쩌면 시간의 무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보게된 사진 한 장이 결국 나를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사진에 매료된 나는 줄곧 친구를 따라 사진촬영을 다녔습니다.
사진촬영대회도 나가고, 이른바 출사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사를 다녀오면 현상소에 들러서 필름이 현상되고 인화되는 과정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나도 언젠가 사진을 하게될거란 것을 예감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과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탓에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홀로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스무 살 언저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전철을 타면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마주쳤는데, 재밌어보였고 대학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삼 수 끝에 내가 원했던 국문과가 아닌 철학과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어린나이였기도 했지만, 국문과 아니면 안돼!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입학금을 가지고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의 첫 여행지는 강릉의 바닷가였습니다. 겨울바다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1일간의 첫 여행을 하는동안 입학금을 모조리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이십대 중후반이 되면서 처음으로 내 카메라를 갖게되었습니다.
이른바 니콘 FM2였습니다. 이때부터 미친듯이 사진을 찍고 공부했습니다.
사진이란게 과연 뭘까? 늘 궁금했고 허기졌습니다.
그렇게 사진의 길로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