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의 질문들 02
어느 노작가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첫 문장은 이랬습니다.
“나는 2차 대전 때 태어났다.”
순간 ‘와, 이거 언제 적 얘기야?’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읽다 보니, 글이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려 내 얘기처럼, 지금 얘기처럼 쓱쓱 읽혔습니다.
근데 나는?
고작 10년 전 얘기를 써봤는데도 어쩐지 글이 구리게 느껴집니다.
오늘 아침,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기름 넣는 사이 담벼락 쪽을 봤는데, 그 틈에 맨드라미랑 접시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의 20대는 맨드라미를 알까? ‘접시꽃 당신’을 쓴 도종환 시인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글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맨드라미를 모르는 20대가 읽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접시꽃 당신’에 담긴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도, 지금 MZ 세대의 연애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오래된 이야기여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책을 읽어주신 것도 아니었고, 집에 책이 많은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냄새가 좋았습니다.
활자가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에 꽤 재미를 느꼈었습니다.
말을 하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이야기들.
내가 사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
그곳은 나에게 위안이자 해방이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외로울수록, 책 속 인물들이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소심한 상처, 집안의 무거운 공기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를 알게 됐습니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무언가가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멍해지거나, 울컥하거나.
시를 읽는 건 마치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어떤 울림의 느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문이 가슴 안에서 천천히 퍼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 교과서가 싫어졌습니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 암기식 시험, 반복되는 시간표.
내 감정도 고민도 담기지 않는 그 시스템에서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를 빼고 시집과 소설책만 들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선생님 눈치를 봤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공부에 대한 의욕은 줄었지만, 언어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왜였을까요? 딱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풍경을 시로 옮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애를 안 해봤으면서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고,
삶의 고단함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세상의 아픔을 끄적였습니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땐 진지했고 진심이었습니다.
단어 하나를 며칠씩 붙잡고,
밤을 새워도 한 줄 못 쓰는 날도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짜 '나' 같았으니까요.
친구들이 입시에 몰입할 때,
나는 시인들의 시를 읽었습니다.
로트레아몽, 보들레르, 네루다, 백석, 기형도, 장석주 등등
그들의 문장에서 시를 배웠습니다.
시인은 멋진 사람이라기보다, 더 많이 흔들리고 더 조용히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불안과 질문을 꾹 눌러 시 한 줄로 건네는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도, 가장 정확한 침묵을 꺼내는 사람.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르는 바뀌었고, 형식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가끔 시를 씁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시.
원고 사이에 숨어 있는 내 속마음 같은 시.
시가 내 글쓰기의 근원이자, 숨통이었습니다.
글이 막힐 때, 마음이 복잡할 때,
나는 지금도 시를 꺼냅니다.
그 몇 줄이 날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건
어쩌면 ‘진짜 나’를 찾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는 시를 통해 나를 조금씩 이해해 왔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문장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시를 씁니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분명히.
시인이란 이름이 없어도,
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아직도,
시인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물렁한 햇볕>
과즙이 쪽 빠진
아버지가 과수원의 잡초를 뽑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복숭아들이
발그랗게 웃는다
수십 년 전의 잠
희거나 검은 꿈이 타들어 간
묘목 아래
배꼽 떨어진 과육처럼
어떤 황홀함도 없이
오래 버틴 것들은 물렁하다
복숭아벌레가 단단한 속살을 깨물며
중심을 향해 침투한 흔적이 있다
번져서 손 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아내는 잡초,
퍼지는 벌레길에 햇볕이 녹아든다
늙은 저녁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