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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프롤로그

by JI SOOOP

나는 나를 작가이자 기획자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데 이 두 단어가 자주 쓰이지만, 그 이름들이 과연 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지는 늘 의문입니다. 사회적 지위란 대개 하나의 일에 몰두하고, 그 결과로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주어집니다. 하지만 ‘작가’나 ‘기획자’라는 호칭은 남이 불러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에서 비롯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자, 이야기를 엮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긴 여정 속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결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는 여러 겹의 결을 품은 존재라는 것. 삶은 직선이 아닌, 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표면만으로는 다 닿을 수 없는, 속 깊이 쌓여온 시간의 결, 감정의 결,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침묵과 기억의 결. 어느 날엔 작가이고, 또 다른 날엔 친절한 이웃이며,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얼굴은 각각의 진실이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새로운 나로 살아가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조용히 이어 붙입니다. 겹겹이 쌓여가는 그 결들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서사가 태어납니다. 나는 이 복잡한 결들을 읽어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단어로, 혹은 기획이라는 구조로,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서사로 엮어봅니다. 그것이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가능하게 하고, 또 ‘기획자’라는 자리에서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완전히 정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나를 쓰게 하고, 엮게 합니다. 정의되지 않기에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고, 이해되지 않기에 이야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결국 나는 아직도 무엇인가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되어가는 중이며, 동시에 누구였는지를 되짚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작가이며, 기획자이며, 그 모든 이름 이전에 이야기를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최근, 나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신과 이야기하면 편하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귀 기울이는 일에 익숙해졌고, ‘듣는 법’을 익히는 동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도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꾹 눌러두었던 기억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연재는 그 이야기들을 담고자 합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 지나온 풍경, 잠시 머물렀던 감정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마음들. 『나를 위한 시간의 질문들』은 단순한 회고가 아닙니다. 이번에 쓰여질 글들은 ‘다시 살아보는’ 연습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더는 감추지 않으려는 작은 용기의 기록입니다. 나는 작가였고, 회사원이었고, 사진가였고, 기획자였습니다. 어떤 시절에는 아무런 염려 없이 살아왔고, 또 어떤 때는 모든 것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름과 시간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나를 새롭게 쓰려합니다. 새로운 역할을 덧붙이기보다, 이미 내 안에 오래된 나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듯,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이번 연재는 어쩌면, 당신에게도 어떤 질문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혹은 당신 내면 어딘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조용히 불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그 이야기를 마주할 용기를 내어주십시오. 삶은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다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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