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시간의 질문들 10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글을 앞서 연재했었습니다.
사진작가로 오래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편엔 문학이 자리 잡고 있었죠.
그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진에 대한 글을 썼었습니다.
맨 처음 썼던 글이 <배병우, 민병헌론>이었습니다.
그 글로 <사진비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사진비평은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지면도 없었고, 불러주는데도 없었죠. 물론 실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주로 전시서문이나 사진에 관련된 잡글을 두서없이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에 대한 편차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끔 사진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름의 행복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글은 절대 낭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압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쓰는 즐거움을 늘 찾아가고 있습니다.
[박병우전시서문] 바다의 시간, 마음에 이는 물결
조용히 시선을 바다로 옮기면 비늘처럼 벗겨지는 소란한 물빛들이 어깨를 철썩인다. 어쩌면 저리도 웅장할까? 바다가 그러하다면, 그럴 땐 차라리 침묵하며 바라만 보리라. 박병우의 바다 사진을 보면, 혼자의 시간이 느껴진다. 시간의 질감들이 손등에 만져진다. 바다는 언제나 낯선 풍경이다. 때론 웅장하지만 때론 침묵 속에 고독과 평온이 있다. 바다 앞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열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한 인간의 구도의 행위와 같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암시를 주는, 혼란스러운 세상과 동떨어진, 빠른 속도, 시끄럽고 즉각적인 세상과 단절된 선, 구분된 회색과 검정의 대비 속에 마음에 이는 물결이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라도에 간 적이 있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린 허름한 식당의 벤치에 앉아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뉘엿한 햇살이 젓가락통에 스며들었고, 툭 던져진 두루마리 화장지를 감싸고돌았다. 사실 마라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육지에서 동떨어진 제주의 끝자락이라는 정도였다. 오후 네 시쯤 막배가 떠나고 나면 섬은 사람의 그림자마저 사라졌다. 가끔 고양이 몇 마리가 뛰어다닐 뿐이었다. 고독해진다. 그곳에서 해 질 녘까지 사진을 찍었다. 새벽녘에도 찍었다. 바다 한가운데 자그만 바위돌, 여가 있었다. 창문이 뜯긴 초소 같은 건물이 있었다. 테트라포트가 둥글게 감싼 포구가 있었다.
그때 나는 불뚝 솟은 바위보다는 여라는 것이 자꾸 눈에 밟혔었다. 이미 섬에서 바라보는 여를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 물때에 따라서 보였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바위돌. 시인 나희덕은 그것을 섬이라고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고 했다. 박병우의 바다에는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기거나, 잊힌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섬, 바위, 여가 종종 보인다. 그들의 앞이거나 뒤쪽이거나 바다의 선들이 형태를 잡아주고 리듬을 들려준다. 단순하지만, 선들을 덮쳐오는 파도의 앞뒤에는 낮게 솟아오른 바위들과 보였다 사라지는 여들이 있었다.
오밀조밀한 형태로 양분된 바다. 선들의 위쪽은 섬세한 회색, 아래쪽은 반짝이는 검정이다. 빛들이 걸쳐놓은 전선에는 어김없이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잔잔한 물결 위에 햇볕들이 머물다 간 흔적들이 보인다. 짧지만 긴 시간 동안의 낭만이다. 같은 빛의 질량을 가지고도 불안감, 두려움, 추위, 혼란이라는 사유가 만들어진다. 때론 소환된 삶의 기억들이 눈물에 젖을 수도 있다.
사진은 애초에 기술적 요소가 강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진은 기술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예술이 되지 않는다. 진지한 예술작품에는 근본적으로 영속적인 핵심이 존재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은 자유를 획득하고 얻어지는 것이다. 사진은 또한 찰나를 즐기기도 하지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파도의 소리를 들으려 마냥 기다린다. 먼저 다가가 움켜잡지 말고 밀어붙이지도 말아야 한다. 그냥 그것이 올 때까지 준비하고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작가는 바다 앞에서 늘 기다렸다.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무수한 발걸음을 통해 동해와 남해의 바다를 담았다. 섬을 담고 바위를 담고 여를 담았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시간이 축적된 힘이 은입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것이 사진이다. 날 것의 사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