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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카메라 탐닉

나를 위한 시간의 질문들 17

by JI SOOOP

아카세가와 겐페이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그는 『나의 클래식카메라 탐닉』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면서 ‘금속인류학’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카메라를 단순한 기계로 보지 않고 금속이라는 물질과 인간의 관계까지 확장해 사유하는 그의 시선은 기묘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는 카메라에 대해 한없이 유머러스하다. 자기 몸속에 자석이 들어 있어 금속에 끌리듯 카메라에 매혹된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심지어 외계인들조차 카메라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엉뚱하게. 그러나 그의 카메라 예찬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다. 클래식 카메라는 단순히 수집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며 사진을 찍고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계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카메라에 대한 탐닉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나는 특정한 카메라에 매달리기보다는 작업에 맞는 도구를 선택해 왔다. 사진은 도구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카메라 없이 이미지를 남기는 실험적인 방식도 가능하겠지만, 사진의 본질은 결국 ‘기계의 사용’에 있다. 다만 나는 기계를 숭배하거나 집착하기보다, 작업의 성격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카메라를 찾아내는 과정을 즐겨왔다.


내 사진 작업은 대체로 이런 순서를 따른다. 먼저 작업을 구상하고 계획서를 쓴다.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고 유사한 사례를 찾아본다. 그다음 카메라 포맷과 렌즈, 필름을 결정한다. 이어서 테스트 촬영을 한다. 결과가 괜찮으면 장비를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카메라는 그저 도구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현실로 번역해 주는 파트너였다.


지금까지 나의 손을 거쳐 간 카메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숫자로 치면 꽤 될 것이다. 작은 35mm부터 중형, 대형 카메라까지. 종류별로 따지면 웬만한 포맷은 두루 경험해 본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특별히 각인된 첫 번째 카메라는 따로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손에 넣은 니콘 FM2다. 당시 동경하던 카메라였고, 학생 신분으로는 큰돈인 36만 원을 모아 샀다. 그것은 내 인생의 첫 카메라였고, 이후 수많은 필름을 삼켜가며 나와 함께 성장했다. 내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길을 열어준 문이기도 했다. 놀라운 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니콘 FM2의 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카메라에 대한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오히려 값이 조금 오른 듯하다.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가치를 품은, 참으로 묘한 기계다.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유머와 애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면, 나의 카메라 탐닉은 조금 더 실용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같은 자리에 도착한다. 카메라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나의 예술적 여정을 증언하고 함께 기록해 온 존재라는 사실. 나는 앞으로도 새로운 카메라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만남이 또 다른 작업의 시작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니콘 FM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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