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도 그랬다
Dear Paul,
그 동안 주고 받은 편지가 어느새 열 손가락을 채우게 되었네요.
처음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폴의 인생 2막과 같은 뉴욕 진출기로 옮겨갔다가 어느덧 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왔어요.
온갖 고난을 겪고 마침내 이집트 총리에 올랐던 조셉의 꿈.
지난 10년 간 뉴욕에서 온갖 고난을 겪어내고 있는(현재진행형) 폴 조셉의 꿈.
그리고 인생 2막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서울의 다니엘의 꿈은...
넌 십몇 년 전에 글을 쓰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줄곧 너의 꿈이 글쓰기라고 믿고 있어
저는 가끔씩 폴이 저를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난데없이 "다니엘의 꿈은 소설을 쓰는 거에요"라고 할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부끄러워지곤 했어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게 얘기하기에는 그 동안 살아 온 제 삶의 경로가 너무 희미하고 띄엄띄엄인 거죠.
아마 웬만한 취미 생활도 그것보다는 자주 열심히 부지런히 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소설 쓰기에 대한 저의 노력과 투자는 게으르고 성의 없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공개 석상에서 그것이 공식적인 제 '꿈'으로 소개되는 순간 제가 너무 저의 꿈을 되는 대로 주머니에 구겨 넣은 종잇조각처럼 소중히 건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게 정말 내 꿈이 맞을까.
맞다면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폴의 얘기가 다시 한 번 저를 일깨웠어요.
큰 꿈이란 단순히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그 꿈을 향한 확고한 방향성이라고 믿어.
우리는 흔들리고, 후회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방향으로
몸과 마음을 돌리는 순간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꿈이 아닐까
한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다가도 문득 문득 다시 생각난다면,
다른 방향을 향해 멀리 달려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그곳을 향해 돌아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휘몰아치는 일에 파묻혀 번아웃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구겨진 채 잠자고 있는 종잇조각으로 손이 간다면...
역시 그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꿈인가.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언제나 제 삶의 한 쪽 구석에 못 박힌 이정표처럼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북극성처럼.
책을 읽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혼자 길을 걷거나 하늘을 쳐다볼 때도 그 북극성은 제 뒷통수 어딘가에서 은은한 빛을 던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읽고 만나고 본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다시 글을 쓰러 돌아올 것을 아는 것처럼.
그런데 꿈도 크고 그것이 잘 됐을 때 기대 효과(?)도 큰 폴과 달리,
저의 그 꿈을 가지고는,
설령 아주 잘 돼서 그 꿈을 이룬다 해도,
50년 남은 인생 2막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것 같은 (저도 싫지만)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들어요.
꿈과 현실은 역시 하늘과 땅처럼 먼 걸까요.
Sincerely,
Dan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