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간에 겪었고 대응했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해 두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 우리 아들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자기의 아픔을 소재로 글을 쓰는 애미라니. 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님과 경험을 공유해 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해자가 용서가 되지 않는 엄마들에게 여기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도저히 난 그 아이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죄책감 갖지 말라고. 또 혹시 글을 쓰며 나도 치유받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
현재 우리 아들 5학년이다. 2년 전쯤... 우리 아들 3학년 2학기 후반부의 일이다.
"엄마 애들이 날 무시해."
"뭐? 뭐라고 무시하는데? 왜 그렇게 느낀 거야?" (이 애미는 쌉T..)
"나 병원 검진받으려고 조퇴한다니깐 이젠 나를 안 봐도 되는 거냐며 놀려."
"방금 선생님께서 너 데려다주시면서 친구들이 우리 아들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보내줬다던데..?"
"그거야 애들이 날 놀리니깐 선생님께서 애들한테 그러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자고 하니깐 그런 거지."
또 다른 어느 날,
"엄마 애들이 나더러 못생겼다고 그래."
"뭐라고? 못 생기긴 뭘 못 생겨. 내가 반 사진 보니 뭐 딱히 잘생겼다 말할 놈들도 없던데, 웃기네! 너 훈남 스타일이야. 귀엽고. 무시해 그냥."
이후로도 아들은 친구들이 날 무시한다는 말, 못생겼다고 하더란 말, 자기가 놀려고 끼여있으면 저리 가라고 한다는 말을 종종 얘기했었고 나는 그저 우리 아들이 약간 만만한 아이인가 보다. 했다.
"엄마, 나는 애들이 자기들끼리 게임하거나 놀때 슬그머니 껴서 노는거 잘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우리 아들이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4학년이었고, 5학년인 현재까지 어두운 그늘이 아이에게 드리워져있다.
상대방도 아이들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듬겠다는 말은 아직까지 내겐 위선일 뿐이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어두운 긴 터널에서 힘들게 손 휘저으며 출구를 찾고 있고, 또 나로 말하자면 그 아이들을 아량 있게 품을 만큼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천박하게 상대 아이들을 폄하하고, 욕하고 가끔은 속이 시원할 정도로 그 아이들을 향해 악다구니한다. "니들이 뭔데 감히 내 소중한 새끼를 아프게해!!" 물론 상상 속에서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하며 생각을 잠시 뒷전으로 미뤄봐도, 시간이 지났다 하여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내 자식이 학교폭력을 당하면 부모도 상처를 입는다. 놀이터에서 자식이 혼자 놀고 있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짠해 눈물 흘린다는 엄마들도 있다는데, 난 나름 자식에게 감정적으로 독립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미인 나의 내상도 꽤 크다. 본인은 오죽할까..가늠이 안되는 아이의 고통을 짐작하고, 점점 침울해 가는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며 분개하다가 불안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등교한 아들을 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빼 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남편은 자기가 너무 엄격했다고, 나는 내가 너무 혼내며 키워서 남들이 뭐라고 할 때 주눅 들게 된 것 같다며 각자 자신을 탓한다. 서로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은 상황이니. 불행 중 다행이다.
전제적인 따돌림 상황은 이렇게 진행됐다.
1. 약 2년 전(3학년 2학기) 같이 놀던 같은 반 친구 2명 정도가 아들에게 핀잔을 주기 시작한 것 같다.
2. 아들은 그 핀잔을 그저 묵묵히 들었고, 그런 핀잔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무리에 껴서 놀고 싶은 아들이 그 친구들에게 엉겨 붙자 아이들의 핀잔과 무시가 계속되고 심해진 듯하다. 이미 이 지점에서 게임 끝. 남자 친구들 간에 생기는 역학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고 기울어진다. 관계의 역학관계에서 진 거다.
3. 주변의 반 친구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며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방관자가 되고 나중엔 동요하게 된다. 낙인효과다. 저 아이는 원래 무시받는 아이, 혹은 그래도 되는 아이.
4. 그렇게 3학년이 끝나고,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3명 정도가 4학년때도 같은 반이 됐다. 주로 놀렸던 A와 같은 반이 됐다. (학교는 사립학교다. 전체 학년 100명 남짓. 남자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4반으로 구성되어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빈번히 같은 반으로 편성된다)
5. 운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아들을 싫어하는 한 명의 다른 아이 B는 4학년 같은 반으로 추가된다.(B라는 아이와는 사연이 있다)
6. 이 두 아이는 점차 생활하다 보니 우리 아들이라는 공통의 타깃이 있음을 감지하고, 처음엔 은근히 간을 보다가 나중엔 노골적으로 놀이에서 배제하거나 놀리기 시작한다.
7. 우리 아들은 4학년 2학기때부터 상황을 명확히 스스로 인지하게 됐고, 몇몇 노는 친구가 있긴 했지만 같은 반에서 과반수가 한 팀으로 아들에게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배제하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8. 이런 상황에서 주변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행위에 가담하진 않는다. 관찰해 보니 단둘이 있을 땐 우리 아들에게 치대며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하더라. 다만 A하고 B와 함께 라면 그 무리에 흡수되고방관자로 돌변해서 우리 아들에게 거리를 둔다.
다양한 학교폭력 행태 중에서 특히 따돌림은 교묘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증거를 잡기도 힘들고 관심을 통해서 "기류"로 알아챌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교실에서 선생님께서 놀이시간에 지켜보면 다 보인다던데,, 내가 보기엔 선생님도 연차가 얼마 쌓이지 않거나 혹은 관계 지향적이지 않은 선생님이라면, 상담을 해도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요? 하는 반응이었다. 웬만한 공력의 선생님이 아니라면 눈치 체고 해결하기도 힘든 것 같다. 어른들이 개입한다고 안좋던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왕따고민들이 표류해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거 보면 따돌림 근절은 어렵다. 다큰 어른들 모아놓은 회사에서도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단어도 있는 것 보면, 상황이 더 암담하다.
그렇다면 안보면 된다. 아이들을 격리시켜 놓으면 상황이 좋아지나? 천만에. 이미 상처받은 피해 아이는 트라우마의 여파로 새로운 친구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의심한다.
이런 경험이 그 아이에게 동굴일지 터널일지 알 수 없다. 터널이라면 긍정적이다. 고민은 있겠지만 빛을 향해 나아간다면, 상황이 좋아진다면 결국 빛으로 나아가니까. 하지만 외부와 점점 멀어질수록 어둠이 깊어지는 막다른 동굴이라면 어쩌나. 그곳에 은둔해 버리면 어쩌나. 하...
처음엔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이 웃음소재로 만만해 보이는 이광수를 놀리는 그런 종류인 줄 알았다. 우리 아들은 똘똘은 하지만 허술해 보이고 약간 만만한 아이로, 이광수 씨께서 대중에게 노출되는 이미지랑 약간 비슷한듯. 아들의 일을 인지한 후 어느 날은 tv속 런닝맨 프로그램에서 이광수 씨가 놀림받던 장면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걸 보고 박장대소하던 내가 소환되면서 얼마나 스스로가 한심하던지,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바보 같은 애미는 내 아들이 저런 꼴을 당하다 결국엔 따돌림까지 당하는 처지가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우리 아들이 겪었을 상황을 상상하다보면 보면 결국 눈물이 핑돌다가 끝내 엉엉 울게 된다.
<출처: 유튜브:런닝맨 스브스 채널>
물론 tv속 장면은 상황극에 가깝고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다.
이런 장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아이들에 관해서 생각해본다. 무심코 타인을 비방하고 재미 소재로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 근저에 상대를 향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놀리고 무시하고 깔깔대는 것만 남을 뿐.
이런지경에 이른것이다. 이 애미는 웃고 넘기면 될 예능도 그냥 넘기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다. 그런 장면을 그저 즐기기가 어려워 졌다. 이 가해자란 놈들의 시작도 그냥 놀다가 재미로 못 생겼다 놀리고 만만해서 툭하고 건드리다 수위가 높아지며 진행된 건 아닐지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