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소년

―02

by 유성

7월 18일 07:10

유성우 병원. 병원 침대 위.


하얀 천장, 순백의 조명. 지한이 비몽사몽 눈을 떴다. 귓가를 울리는, 낯선 이명. 고요한 병실 안은 지한의 옅은 숨소리와 낮은 심장박동 소리만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쪽 벽면이 전부 길고 네모난 창문이었다. 희미하게 스러져가는 보랏빛과 떠오르는 오렌지빛. 지한은 한참 동안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복부와 어깨를 쥐어짜는 고통에 거친 신음을 토해냈다. 어둠 속 빗길을 달리는 심야버스. 이성을 잃은 하연의 섬뜩한 웃음.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 끔찍한 살상의 기억들. 그 모든 건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


병실 밖이 한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벌컥 문을 열고, 젊은 간호사가 서류 몇 장을 안고 급히 들어왔다. 간호사는 지한의 왼쪽 팔목에 달린 링거 줄과 어깨, 복부에 감긴 붕대를 재빠르게 확인했다. 그제서야 마치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조직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지만 회복 경과는 아주 좋아요. 수술 중에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곧 병원으로 오신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푹 쉬시고, 혹시 불편하신 점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친절한 간호사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병실은 다시 적막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근육은 좀처럼 지한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건, ’하연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에 대한 질문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같은 아파트. 같은 학교. 같은 반. 거기에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지한은 결코, 하연을 “잘 안다.”라고 할 수 없었다.


딱딱한 병원 침대가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다. 왜 더 가까워질 수 없었을까. 왜 아무것도 묻지 못했을까. 그저 곁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자신은, 결국― 하연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분노에 가까운 자책감이 솟구쳤다. 얇은 병원 침대보가 손쉽게 구겨졌다. 무력함과 회의감 속, 천천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푸른색 병원복. 복부와 어깨, 허벅지 양쪽에 단단히 감긴 하얀 붕대. 붕대 속에서 경미한 근육의 떨림이 일렁였다. 이딴 고통 따위, 병원 밖의 하연에 비하면 어린애의 칭얼댐처럼 하찮았다.


2m 조금 안되는 거구의 경찰이 병실 문을 거칠게 밀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푸석하게 일어난 피부.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그의 워라밸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인사는 생략되었다. 낮고 진지한 목소리. 예고도 없이 대뜸, 본론이었다.


"2025년 7월 17일. 저녁 10시 10분. 동화차고지로 향하는 127번 버스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전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엔 ‘아니요’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짙은 눈썹, 매서운 새까만 눈동자가 지한을 꿰뚫어 보았다. 그 시선이 닿자, 지한은 알 수 없는 주마등에 휘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숨겨야 할까. 그저 말없이, 천천히 오금이 저려왔다.


"…이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 병원이었어요. 이 상처는, 사람들을 돕다가… 그래서, 다른건 기억이 잘 안 나요."


지한의 말은 끝을 흐리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경찰의 시선이 긴 침묵 속에 이어졌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한은 믿을 수없었다.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던 소녀. 수줍은 미소와 섬세한 목소리. 그런 하연이 괴물… 일리가 없잖은가?


침대 오른편 탁자 위. 액정이 박살난 지한의 휴대폰이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허리를 폈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 것이다. 전면 카메라를 응시하자, 지한과 친구들의 사진 위에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긴급 재난 문자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송일시: 2025년 7월 18일 06:24

[중요] 서울 전역 이상 행동 발생 신고 급증

시민 여러분의 외출을 자제해 주시고, 각 가정/기관은 즉시 비상대비 체제를 가동해 주십시오.

현재 강서구, 마포구, 동작구를 포함한 다수 지역에서 극단적 폭력성 및 광기 증세를 보이는 집단행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신체에 치명적 손상으로 사망

-가해자는 신체 능력의 비정상적 증강, 감정통제력 상실, 언어소통 불가

-현재까지 전염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강한 외부 자극 혹은 정신적 충격과의 관련성 검토 중

▶ 각 가정은 창문과 출입문을 봉쇄하고, 낯선 인물의 접근을 삼가 주십시오.
▶ 가까운 병원 및 보건소의 진입은 제한됩니다. 온라인 지시를 우선 따르시기 바랍니다.
▶ 지하철 2호선, 5호선, 9호선 일부 구간이 운행 중단 상태입니다.

정부는 현 상황을 '도시기능 일시 마비 상황'으로 판단, 군부대 및 경찰특공대 투입 예정입니다.

※ 이 문자는 전국에 동시 발송됩니다. 타 지역 주민 또한 심리적 동요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시선이 배경화면에 멈췄다. 노을 진 학교 운동장에서 해맑게 웃는 친구들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초점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래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깨가 욱신거리고, 복부의 상처는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아팠다. 그치만 더는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7월 18일 08:05

새빛 아파트. 15층.


엘리베이터의 빨간 디지털 숫자가 15를 만들었다. 10년동안, 이곳에서 매일 아침 하연과 눈을 마주쳤다. 같은 층 버튼을 누르고, 같은 거울을 보았고, 서로의 존재를 의식했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나날들. 지한은 하연이 늘 서 있던 구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켜보기만해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띵—’


1501호와 1502호가 나란히 마주 보는 새하얀 복도. 5층의 자신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벽면에 일체화된 소화전까지도 똑같았다. 하연의 집. 1501호 앞에 서, 한동안 말없이 숨을 골랐다. 차분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그녀의 행방을 묻는다.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 127번 버스를 타기 전의 그 자신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지한은 조심스레 하연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맑은 멜로디가 복도를 가볍게 울렸다. 곧이어 찾아온 정적. 1초, 2초, 5초. 지한이 다시 한번 벨을 누르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현관문이 열렸다.


백하연의 집 안.


“물… 마시고 싶니?”


유리컵에는 차가운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컵을 건넨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받아 들고, 바싹 마른 목을 축였다. 잠깐의 침묵 뒤, 하연의 아버지가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하연이랑 친한가? 어제, 학교에 가선 여태 돌아오지 않았어. 혹시 어디 간다고 들은게 있니?”


그건 오히려 지한에게 돌아온 질문이었다. 그는 하연에게 친구인적이 있었을까. 물을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몇번의 형식적인 안부인사가 오갔지만, 그들에게서 알아 낼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7월 18일 08:30

새빛 아파트. 비상계단.


육중한 철문이 닫히자, 복도는 고요했다. ‘하연이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곳에 두 명의 경찰관이 있었다. 둘 중 한 명은 낯익었다. 아까 병실에서 봤던 다크서클 진한 중년의 경찰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무전기에 집중하고 있었고 옆의 젊은 경찰은 눈앞의 지한을 보고 흠칫 놀랐다. 동시에 무전을 통해 지직거리며 어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서구 한결극장 앞, 10대 여성 난동자 발견. 검은 후드, 맨발. 민간인 3명 부상. 응급 대응 요청…"


심장이 요동쳤다. 검은 후드. 맨발. 언어 소통 불가. 하연이었다. 아니, 하연일지도 모른다. 경찰들은 무전을 확인하며 바삐 하연의 집쪽으로 향했다. 지한의 시간이 잠시 멈춘것 같았다. 이내 정신차리고,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망설이지 않고, 계단 쪽으로 뛰었다.


온 몸의 근육들이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곳에 하연이 있다면… 멈출 수 있다면. 지한은 숨을 깊게 마셨다. 손등이 새 하얘질정도로 손잡이를 잡고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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