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졸업 Family graudation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by 눈꽃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까만색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 옷의 특유한 냄새가 코에 확 끼쳐왔다. 손바닥을 반 넘게 덮은 긴 저고리와 바닥을 끄는 긴 치마를 한 움큼 잡아 들어야 걷는 게 수월했다. 건너편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왜 저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고 우리는 까만 옷을 입느냐고. 삐뚤어진 저고리 고름을 다시 메주던 작은 고모가 대답했다. 죄인이라 그렇다고, 부모를 두고 앞서간 자식이 죄인이라 우리는 새까만 옷을 입어야 한다고. 아, 그래요? 빳빳한 그림자가 몸을 무겁게 휘어 감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죄인이 되고 싶어 죄인이 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씁쓸했다. 주변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그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수 없었다. 수영 못하는 내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차디찬 침대에 누워 깊은 잠을 자고 있었으니까. 장례식장에 와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나의 검은 상복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듣지 못한 척 바쁘게 움직였다.


아빠가 죽었다, 거짓말처럼. 응급실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엉엉 우는 내 손을 잡으며 아빠는 아무렇지 않으니 울지 말라고 달래던 목소리가 귓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물이 많았다고 했다. 서러워도 울고, 슬퍼도 울고, 화나도 울고. 툭하면 우는 나를 달래주던 건 아빠의 품이었다. 딸, 눈물을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그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더 울어버리곤 했다. 우는 내 모습을 보면 아빠가 속상해하는 줄 알면서도 울었다. 달래주는 이가 있으니 울면서도 기꺼웠다.


독한 년. 엄마에게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독한 년이었다. 아빠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소리를 듣고도 눈물이 나지 않았으니 나는 정말 독한 년인가 보다, 하고 말았다. 너는 나 죽으면 화장실에 숨어 웃을 년이지. 엄마는 잊을법하면 내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에 숨어 봤다. 울음이든 웃음이든 상관없으니 감정이 밖으로 나왔으면 해서.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잔잔했다. 무얼 던져도 파동이 일지 않았다. 아빠가 울지 말랬어. 손을 씻으며 나는 거울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는 미리 나를 달래 놓고 떠났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혼절할 정도로 울며불며 따라 죽겠다며 소동을 피울 딸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 가족은 아빠의 죽음으로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아빠라는 접착제로 이어져 있던 엄마와 나, 그리고 나와 남동생. 아빠라는 존재 없이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던 나. 이상하리만큼 엄마는 나를 싫어했다. 다른 집 애들은 가출도 한다던데 너는 왜 안 나가니? 아빠가 밖에서 낳아 데려온 자식이거나 누군가의 부탁으로 나를 맡아 키우는 거라면 차라리 덜 서글펐을 거다. 불행히도 나는 엄마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아빠라는 끈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밀려 나가는 것 같았다. 아빠 하나만 보고 억지로 머물러 있었던 가족의 공간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되었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았던 날이 연장되느냐, 도망쳐서 자유의 몸으로 살아가느냐. 아빠는 나를 너무도 일찍 어른의 길로 데려다 놓았다.


“이제 엄마는 너만 믿고 산다.”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작은 버스, 가장 앞자리. 나는 왼쪽 창가에 혼자 앉았고 엄마는 남동생과 함께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삼촌이 혼자 있는 나를 보고 사촌 동생을 데려다 앉혀두지 않았더라면, 한 시간 남짓한 길을 오롯이 혼자 버텨야 했을 거다. 엄마는 남동생의 손을 꼭 잡고 울먹였다. 엄마는 이제 너밖에 없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그런 엄마를 어른스럽게 안아 주었다. 아, 그렇구나. 엄마에게는 남동생만 남았구나. 애초에 나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서운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가 원하지 않았던 자식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을 뿐이었다.


깊이 파둔 구덩이 안으로 관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 위로 흙 한 삽이 툭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아빠의 죽음을 실감했다.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사라졌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부정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 아빠 위로 차오르는 흙에 엄마를 내던지고 남동생을 묻었다. 앞으로 홀로 싸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기댈 곳이 없고 잡을 것이 없어 꿋꿋하게 서서 아빠의 무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가족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가족이 끝났다. 아빠는 나에게 가족 졸업장을 마지막 선물로 남겨 주었다.


온전한 홀로서기가 가능하게 됐을 때, 나는 백만 원을 들고 집을 나왔다. 아빠가 잠들어있고 엄마가 머무는 도시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복도 쪽으로 난 작은 창문 하나 있는 고시원 방을 구했고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낯선 도시에 적응해나갔다. 달력의 숫자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며 과거도 함께 끊어 나갔다. 나는 그럭저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혼자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일찌감치 나를 어른의 길로 떠밀었던 아빠의 마지막 손길 덕분이었을지도. 가족이 없어 서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명절이면 먹고 싶은 걸 사 먹고 생일이면 나를 위한 선물을 샀다. 비로소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방법인 것 같았다.


가끔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아무 날도 아닌, 보통의 날에. 바람도 파도도 없는 바다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멈춘 시간 위에서 나는 아빠를 떠올리곤 한다. 소가 먹이를 토해 되새김질하고 다시 삼키는 것처럼 아빠가 죽었던 날 느꼈던 감정을 끄집어내 꾸역꾸역 되짚는다. 그 날 다 쏟아내지 못해 응어리진 슬픔을 꼭꼭 씹어 삼킨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삼켜야 다시 넘어오지 않을까. 가족을 졸업했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마음을 두 동강 낸 그 날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낫도록 연고를 발라 호호 불어줄 생각도 없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곪아서 진물이 새어 나오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게 오래오래 아빠라는 단어를 옆에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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