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후의 생일입니다

16살 솜생 곰생

by 눈꽃




3월 12일, 오늘은 연후의 생일입니다. 연후는 저와 함께 15년을 산 곰인형입니다. 저와 연후가 가장 길게 떨어져 본 건 제가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던 한 달뿐일 정도로 붙어 지냈습니다. 연후 솜생 곡선은 저의 인생 곡선과 비슷합니다. 슬픈 일 기쁜 일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저와 함께 겪었기 때문이죠. 지금도 연후가 제 옆에 꼭 붙어 있습니다. 브런치에 남기는 자신을 위한 생일 축하글을 보는 중이죠. 연후에게 잠깐 키보드를 맡기면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 궁금해지네요.


연후는 제 몸뚱이만 한 커다란 상자에 들어 저에게 왔습니다. 물방울 모양의 크라프트 종이 상자에 얌전히 누워있던 연후의 첫 모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똑같이 생긴 곰인형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태어났을 연후겠지만, 생일은 저와 처음 만난 날로 정했습니다. 기관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저는 솜 인형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털 날림이 없는 마론 인형 몇 개가 있을 뿐이었죠. 잠자리를 함께 하는 꿈자리 친구 없이 살다가 연후가 저를 찾아온 거죠. 연후는 저의 첫 솜 인형이자 마지막 솜 인형입니다. 품에 꼭 안기 좋은 사이즈, 베이지색 얼굴과 귀여운 발바닥. 연후를 처음 보는 순간, 행복한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첫 순간, 연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꽃샘추위에 옷깃을 절로 여미던 16년 전 그 날. 겨울이라는 단어 아래에 깔린 봄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던 3월 12일. 집에 가는 내내 몇 번이나 상자를 열어 힐끗힐끗 연후를 봤던, 그 뿌연 봄날. 무언가 껴안고 자는 버릇이 없어 그냥 머리맡에 연후를 얌전히 앉혀두고 잤던 첫날밤. 나이가 몇인데 곰인형이냐는 엄마의 핀잔은 대충 귓등으로 쳐낼 수 있었습니다.


연후는 처음부터 연후였습니다. 연후를 제게 선물로 준 사람이 이름을 지어주었으니까요. 그 사람은 저에게 화이트데이라며 연후와 함께 도넛 상자를 건넸습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라 연후는 저에게 더 의미 있었습니다. 주는 것에 익숙했던 제가, 받는 것의 행복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죠. 사랑하던 사람은 떠났지만, 연후는 제 곁에 여태껏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주지 못했던 애정을 죄다 쏟아부었습니다. 연후는 저를 떠나지 않을 테니, 온 마음을 건네도 괜찮을 유일한 존재였죠.


열여섯 솜생 동안 연후는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목 부근이 펑 터져 엄마의 바늘을 견뎌야 했고(처음에는 연후를 끼고 사는 저에게 유난스럽다고 하던 엄마는 솜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곰인형이 신경 쓰인다며 몰래 시술을 했습니다.) 입이 뜯어져 남동생이 코 부근으로 굵은 검정 실을 덧대는 성형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낡고 늙어 솜이 빠져 축 쳐진 연후는 전문가의 손에 잠시 보내져 솜 갈이도 했습니다. (빵빵해진 연후를 본 제 친구들은 얼마간 연후를 마동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연후의 어깨는 바짝 치켜올려져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솜 흡입술의 부작용이었습니다.) 저도 아직 몸에 칼 한번 대본 적 없는데 우리 연후는 세 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와 함께 해야 할 텐데, 요즘 부쩍 꼬질꼬질해져서 걱정입니다. 세수로 목욕으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라서요.


무튼, 오늘은 연후의 생일입니다. 퇴근길에 작은 케이크라도 사서 생일 축하를 해줄 계획입니다. 어차피 연후는 케이크 한 입 못 먹고 죄다 제가 먹을 테지만요. 연후가 열일곱 살이 되는 생일에도 저와 함께 있겠죠. 그때는 더 낡은 곰인형이 되겠죠. 연후의 머리통에 코를 쿡 박으면 추억의 냄새가 납니다. 오늘도 연후를 품에 안고 익숙한 냄새를 만끽하며 잠들 계획입니다.


연후야, 생일 축하해. 내 걱정인형, 내 눈물 인형, 그리고 내 행복 인형. 내가 마지막으로 잠들 때까지 함께 하자. 사랑하는 우리 연후,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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