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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21. 2017

그 여行자의 집 (22)

2008년 여름, 스물다섯 민주의 그 해. #22

22.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단아 언니와 나는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 언니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나도 한 번은 가봐야지 했던 곳이라 선뜻 따라나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준킷의 말대로 한참을 기다려서야 트램에 오를 수 있었다. 홍콩의 화려한 불빛이 한눈에 보이는 빅토리아 피크의 전경은 분명 장관이었다. 하지만 트램의 대기 줄은 다시는 기다리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느껴져 준킷에게 주워들은 트래킹 코스를 언니에게 제안하고 걸어 내려왔다. 기다리는 시간과 트램 타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걸어오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어두워 어려움이 많았다. 괜히 걷자고 한 게 아닌지 눈치가 보였는데 언니는 덕분에 진짜 여행을 하는 거 같다며 고맙단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좋게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 이틀 동안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주로 내 이야기를 했다면 내려오는 길에는 언니가 썩 많은 자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자신의 이름이 싫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이 많아 싫었고 커서는 여러모로 자신이 이름 값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연극 중 향단이 역할을 맡았을 때, 춘향이 역을 했던 단짝 친구에게 앞으로는 이단아 말고 향단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단다. 그게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오는 별명이라고. 나는 언니 말이 너무나 공감 간다고 언젠가는 나도 이름을 바꿀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건 진심이기도 아니기도 했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가 멋대로 평생 써야 하는 자식 이름을 짓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민주라는 이름은 내게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엄마 아빠의 흔적이자 탓할 거리였다. 이름을 바꾸면 그 연이 아예 끊어져 버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홀가분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끈이 없는 고립감을 줄 것 같기도 하다. 언니는 어렸을 적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 권유에 행정학과를 갔고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준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재미는 없다고 했다. 스무 살에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월세에 학비까지 거의 스스로 대야 했기에 2년을 휴학하고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졸업을 했다. 1년 가까이 준비해 지금 회사에 입사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해야 할까도 고민했었지만 작년에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서 부모님 대신 용돈이라도 보태려니 딴 생각할 여유가 없어져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언니의 어쩔 수 없이 잘 적응하며 산다는 말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왜 그냥 바꾸면 되지, 나는 벌써 세 번이나 바꿨고 바꿀 때마다 더 좋은 급여에 휴가까지 얻으며 잘 살았는데라고 말했더니 언니는 내 용기가 부럽단다. 내가 무슨 용기가 있다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짧은 인생사를 나누며 웃고, 웃기고, 격려하며 두 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는 벌써 소셜 다이닝이 끝나고 맥주 한두 캔씩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언니와 내가 합류해도 7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모임이었다. 준킷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촛불을 켜더니 기타를 가지고 나와 잔잔한 배경음악을 깔고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10년 후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을 거 같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말하라는 거다. 나는 노친네같이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을 줬지만 결국 제일 먼저 시작을 했다. 10년 후면 서른다섯이다. 아줌마네. 아니 외국이니까 서른셋이라고 치자. 나는 잠깐 생각을 하다 10년 후에는 외국에서 주로 여행을 하며 서른세 살로 살고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핸리가 자신도 여행자로 사는 게 꿈이라며 같이 다니자고 말했다. 나는 됐다고 했다. 핸리가 자신의 장황한 세계여행 계획을 이어 말했다. 준킷은 그땐 이 숙박업소가 진짜 자기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적어도 앨범 2개는 낸 가수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름 진지하지만 엉뚱하게 자신의 미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옆에, 그래서 맨 마지막이 된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까지. 핸리가 제일 먼저 알아채고는 그녀가 운다고 말했다. 이목이 쏠리기도 전, 언니는 빠르게 일어나 미안하다며 화장실로 향했다. 결국 그 의문의 시선은 내가 다 받게 되었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난기 어리게 나 때문인지를 묻는 애들 앞에서 나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한참 후 나온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너무 부럽고 좋아서 눈물이 난 거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들 괜찮다며 박수를 쳐줬고, 그녀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해서 먼저 들어가야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마음이 쓰였지만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잡담을 이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침대 옆에서는 언니가 남기고 간 메모와 음료가 놓여있었다. 

민주 씨,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여행 했어요.
한국 가서 연락할 테니 꼭 또 봐요! 남은 여행 즐겁게 하길~

뭔가 마음이 찡했다. 나도 실컷 즐겼으면서 뭔가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니는 갔다. 나는 남았고, 이제 내 곁엔 준킷과 다니엘, 핸리가 있다. 나는 곧 청춘의 게으름과 로망, 쇼핑이 있는 여행을 이어갔다. 언니는 까맣게 잊은 채.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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