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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21. 2017

그 여行자의 집 (21)

2008년 여름, 스물다섯 민주의 그 해. #21

21.

 우리는 큰 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걸으며 생과즙이 듬북 들어간 시원한 망고주스를 마시고 있다. 이 얼마나 여유롭고 풍요로운가? 대체 한국에는 왜 이런 맛있는 음료들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하나 들여가서 장사나 하면 떼돈을 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진짜 맛있네요.」

「그렇죠? 저 이런 가게 한국에 차리면 돈 좀 벌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왠지 민주 씨는 잘 할 거 같아요. 나도 나중에 카페 같은 거 차리고 싶은데. 진짜 카페보다 이런 생과일음료를 파는 가게면 더 좋을 거 같아요. 근데 우리나라에선 망고 같은 거 구하기 힘들겠죠.」

「훗.」 

그녀의 진지한 얼굴에 카페 이야기가 웃음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녀가 뭐가 웃기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러게 나도 뭐가 웃긴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녀의 순수함 혹은 어리숙함이 뭔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져서였다랄까. 알고 보니 내 또래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스물아홉이었다. 친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괜히 물어본 거 같다. 나는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겠다고 했고, 그녀는 나를 민주 씨라고 부른다. 말을 놓으라고 했지만, 어색한 모양이다. 영어 쓸 땐 천상 한국인인데 그런 면이 약간 한국인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편견일 수 있지만 원래 우리 문화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나이에 맞춰 말 높이고, 내리고, 술 좀 같이 마시면 빠르게 친해지고. 아무튼 나는 그녀의 그런 면이 썩 마음에 든다. 나이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행동들이랄까.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그녀는 어른답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아이 같은 표정과 말투를 지닌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틀 내내 그녀와 홍콩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가이드 아닌 가이드를 자처하게 되었다. 말로는 괜히 구시렁거리고 있지만 사실 나쁘지 않다. 함께 다닐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을 받는 것. 물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니엘과 준킷을 생각하면 내가 여기서 이 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녀는 내일이면 가고 나는 사흘 정도가 더 남았으니 내일부터 그들에게 집중해주면 되겠지. 이 언니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 성격상 여행지에서 한국인과 어울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나는 내가 천상 한국인인걸 알기에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게 싫다. 기껏 멀리까지 와서 여전히 나를 버리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랄까.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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