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알은 왜 깨지기 시작했나?

내가 사는 곳

by 알깨는 아줌마

내가 사는 곳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이곳은 산책을 나가면 사람보다 새를 더 많이 만난다. 게다가 지나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Hello! 아침이면 Good moring! 정도의 한마디를 건네고 How are you? 가 나오기 전에 휙 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 나는 역시 도시여자라 이런 시골에서는 못 살겠다 생각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도시 쪽으로 나가려고 다른 집도 알아보고 다녔었다. 그러는 사이 4년이 흘렀고 나는 완벽하게 시골 여자가 됐다.


얼마 전 한국에서 돌아왔을 때 스님이 속세에 내려갔다가 다시 산속 절로 복귀했을 때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 생각이 멈췄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나에게 아무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내 하루는,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여기서 그 누구일 필요가 없이 살고 있다. 그냥 ‘나’다. ‘엄마’, ‘아내’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내가 선택한 역할만 하면서 살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졌던 누군가의 ‘딸’, ‘언니’, ‘동생’의 역할이나 혹은 더 커서 부여된 ‘며느리’, ‘친구’, ‘동료들’, ‘지인들’ 그 모든 이름들로 주어진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 나라는 그릇에는 ‘내’가 1/10은 채워져 있었을까? 부여된 ‘이름’들이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의 내 그릇은 '나'로 반 이상, 어쩌면 전부가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이 거듭될수록 내 알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더 커지고 있고 다른 역할들의 공간도 더이상은 작아질 수 없으니 이 알을 깨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나’를 아주 잠깐도 작은 곳에 욱여넣을 수가 없게 됐다.


사람보다 새를 더 많이 만나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만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걸음들을 걷던 시간동안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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