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이들 아침을 챙긴다. 달걀을 찜기에 올리고, 블루베리를 씻어놓고,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토스트기에 넣는다. 접시 세 개를 꺼내고, 블루베리를 물기 빼서 담고, 크림치즈와 달걀을 곁들여 아이들에게 배달. 아침 미션 완료.
그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온다. 6개월째 공복유지 오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아침에 방탄커피를 마신다. 커피머신이 식탁 너머 부페장 위에 있다. 식탁 옆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길에 항상 막내 의자가 막고 있다. “의자 좀 당겨 앉자.” 최대한 담담하게 말해보지만, 이미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다. 커피머신 버튼을 누르고 돌아오면 밀려오는 건 죄책감. ‘좀 더 부드럽게 말할걸.’ ‘그냥 내가 돌아가면 될걸.’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이 패턴. 몇 달을 그렇게 살았다. 결국 오늘 에라이, 하고 식탁을 20cm 앞으로 밀었다. 잔소리도, 짜증도,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찜기 얘기로 가보자. 아마존에서 사도 되는 걸 예쁜 걸로 사겠다고 한국에서 공수했는데, 한 번 쓰고는 방치 상태. ‘또 예쁜 쓰레기를 샀구나.’ ‘나는 왜 이렇게 소비만 하고 잘 쓰질 못할까.’ 쿡탑 옆 구석 공간에 방치된 찜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이 불편감. 그러다 문득 찜기 위치를 옮겼다. 냉장고 옆, 달걀통을 꺼내기 좋은 자리에. 달걀 통을 올려놓을 공간도 충분했다. 그 후로 달걀은 매일 잘 쪄지고 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간단한 해결이 있었다.
늘 뭔가 안 풀리면 바로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하나.’ ‘왜 이렇게 끈기가 없어?’ 그렇게 파고들다 보면 결국 나는 또 나를 몰아붙였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부드러워야 한다고, 더 완벽해야 한다고. 그런데 결과는 늘 같아.
‘난 왜 이렇게 생겨먹었지?’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문제에는 답이 있다. 시선만 돌리면, 질문의 방향을 밖으로 돌려보는 거다. ‘이걸 잘 되게 만들 방법이 있나? ‘식탁을 당기면 될까?’ ‘찜기 자리를 바꿔볼까?’ 그렇게 질문을 안이 아닌 밖으로 던져볼 때, 의외로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 의외로 많다.
내 탓 그만. 지금은 그렇게 다짐해 본다. 언제 또다시 죄책감과 짜증의 루프로 빠져들지 몰라도.
오늘도 달걀은 잘 쪄졌고, 나는 내 방탄커피를 들고 식탁 옆을 무사히 지나와 이 글 썼다.
그다음 불편감이 몰려온다.
‘이건 걸 글로 써도 되나? 너무 소소해서 이걸 읽는 사람들이 ‘이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내 탓 그만!
그렇게 느끼는 건… 네 탓입니다! ^^
#내알에금가는소리들었어?